[현오현우] 함부로 애틋하게| # DUNGTEA 2014. 9. 19. 00:23
"현오 형."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서류에 파묻혀 있던 현오가 고개를 들어 문간에 서 있는 현우를 바라봤다. 아마 머리끈이 끊어진 건지 머리는 풀려서 잔뜩 흐트러져 있었고 손에는 짤따란 천조각이 들려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천천히 걸어서 방으로 들어서는 현우의 모습에 현오 역시 몸을 일으켰다. 느릿하게 쇼파에 앉은 현우의 뒤에 가서 선 현오는 현우가 내미는 천조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를 묶기엔 한참 모자랐다.
"이걸로는 못 묶어, 현우야."
"이거밖에 없는데, 어떡합니까."
"곤란한데… 그럼 머리 땋아 줄게. 그 정도는 묶일 것 같으니."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밤도 아닌데 꼴사납겠지만."
아니. 넌 그 편이 더 잘 어울려.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킨 현오는 천천히 돌아서 현우의 옆에 앉았다. 자연스레 마주보도록 몸을 트는 현우가 졸린 건지 눈매에 힘을 풀었다. 피곤할 만도 하지. 문득 나올 뻔한 말을 또 다시 삼킨 현오는 헝클어진 현우의 머리를 손으로 빗기 시작했다. 간혹 엉킨 머리에 손가락이 걸릴 때마다 아픈 건지 눈매를 찡그리며 작게 신음하는 현우의 모습에 현오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괜히 혼자 어색해진 현오는 머리를 나누어 땋기 시작하면서 현우에게 말을 붙였다.
"많이 피곤해?"
"그냥 조금요. 형도 피곤할 텐데, 아무래도 형 손이 편해서 자꾸 찾게 되네요."
"아냐. 어차피 너 혼자서는 못 묶잖아."
"그럴까요?"
현우가 천진하게 웃었다. 구김살 없이 딱 그 제 나이에 맞는 웃음이었지만 어딘가 서늘한 느낌에 현오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 여기 옷에 머리가 끼어 있었네. 나름대로 분위기를 완화하려 현오가 탄성 비슷한 것을 내며 현우의 옷에 들어가 있던 머리를 꺼내려 하자 혀를 끌끌 차던 현오가 먼저 손을 움직였다. 사그락 사그락, 머리칼을 한 가닥으로 모은 현우는 더 남은 것이 없는지 확인하려는 건지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고선 현오에게 머리 묶음을 내밀었다.
"그렇게 꼼꼼하질 못해서 어떡합니까, 차기 가주."
현우가 짓궂은 목소리로 놀리듯 말했지만 현오는 잠시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우의 손길에 순간순간 드러나던 목덜미 안쪽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던 자국. 현오가 어딘가 굳은 채 가만히 있자 현우가 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쥐고 있던 머리칼을 놓아 다시 풀어지게 했다.
"역시 그 끈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현우야."
"어차피 곧 밤이니, 저 혼자 해도 괜찮습니다."
"…현우야."
"바쁘신 몸이지 않습니까?"
현우가 넌지시 결제가 잔뜩 밀린 현오의 책상으로 시선을 던졌다. 겉으로 보기엔 배려였지만 명백한 명령이었다. 슬핏 인상을 찌푸린 현오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현우는 노곤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현오에게 고개를 까닥이고 뒤돌았다. 자존심 센 고양이마냥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낭창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관음증 환자 마냥 바라보던 현오는 문고리를 잡고 선 현우가 대뜸 돌아서서 생긋 웃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난감한 열기가 얼굴에 피어올랐다.
함부로 애틋하게
written by. 르헨
무술가로 태어난 사신 후계자, 그리고 그 후계자가 선택한 차기 가주. 현오와 현우 자신이 집안의 중심을 잡기 시작할 무렵부터 가문 여기저기에 잡음이 많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부친마저도 현우를 영 탐탁잖아 하기 일쑤였다. 현오 자신은 집안 어른들의 사업 놀음에 끼어 뒤집어 쓴 적도 많았고, 현우 역시 집안의 다른 주술사에게 말로 조롱 당하는 것은 기본이요 심하게는 상흔을 입기도 했다. 살얼음판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현오와 현우의 처지가 썩 잘 풀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지분을 끌어모아 이사회를 소집해 늘 현오를 괴롭히던 주주들은 어느새 현오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었고, 집안의 어떤 사람도 무술가인 현우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만이 해결해 주었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순탄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만 하던 현오는 당시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갈수록 무술가로서 빛을 발하는 현우를 그 나름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안이하게 굴었다. 현우 역시 순수하게 기뻐하는 현오의 모습에 말갛게 웃어 주곤 했다. 정말 잘 되었습니다, 차기 가주. 당신의 공이 커요 ― 따위의 말을 하며.
현오가 속 편했던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곧 총선 날짜가 다가오니 현오 네가 그 자에게 가 보거라.」
「…그 자 말입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부친도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술가 집안인 만큼 굳이 사신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뛰어난 주술사들이 더러 있었는데 선례의 몇 대를 거슬러 가도 비할 바가 없다할 정도로 압도적인 주술사가 한 명 있었다. 때문에 평생 흥청망청 쓸 돈을 지원 받는 대가로 총선이라든가 공정위나 검찰청과의 마찰이 생길 때마다 사람을 멋대로 부리는 일을 했는데 과연 그 성미는 사람을 썩 기분 나쁘게 했다.
그 중 현오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은 물욕이 없는 인간도 아니면서 부친이 추가로 보수를 챙겨 주려 하면 비릿하게 웃으며 보수는 늘 잘 받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따위의 말을 해대는 것이었다. 별거 아닌 듯 넘길 수도 있었지만 현오는 이상하리만치 남자의 말이 기분 나빴다. 그렇게 말하며 어쩐지 자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비웃는 것까지.
여러모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남자가 살고 있는 주택의 정원 계단을 오르던 현오가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도 딱히 마중을 나온다거나 하는 일이 없는 남자였기에 별 생각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현오는 그나마 늘 자신을 맞아 주던 도우미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관에선 잘 보이지 않는 주방으로 멀찍이 시선을 던지며 1층 제일 안쪽에 있던 침실로 다가가던 현오는 문을 다섯 발자국 쯤 남기고 멈춰섰다. 썩 유쾌하지 않은 타이밍에 찾아온 듯했다. 살짝 열린 문 틈으로 흘러나오는 진득한 숨소리에 현오는 역시 상종 못 할 인간이라며 고개를 젓고선 발걸음을 돌리려 했지만 이내 다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흣, 아… 하악! 아앗, 앙, 아씨, 잠깐마안.」
익숙했기에 낯선 목소리였다. 그 느낌이 너무 낯설어 처음엔 비슷한 목소리를 착각하는 것이라고 애써 부정하던 현오는 안에서의 교성이 높아지자 자신도 모르게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경보가 울렸지만 애석하게도 현오는 세이렌에게 홀린 뱃사공처럼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결국 조심스럽게 열린 문 틈으로 초점을 맞춘 현오는 보고 말았다. 자신에게 현무가 새겨진 등을 내보인 채, 사내의 위에 앉아 정신 없이 매달리고 있는 현우를.
헉, 소리가 새어나올 뻔한 입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막은 현오는 뒷걸음질을 쳐 서둘러 집 안을 벗어났다.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현오에게 있어선 너무도 생소한 ―지나치게 색정적인― 현우의 모습이 뇌리에 틀어박혀 웅웅거렸다. 이제 십대의 끝에 걸린 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모습이 어울렸다. 한동안 차에 앉아 몽롱하게 있다가 혹시라도 현우랑 마주칠까 교외를 몇 바퀴 빙빙 돌고 다시 남자의 집으로 돌아간 현오는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웬 쥐새끼 때문에 아이랑 한 약속을 못 지키게 됐지 뭐야.」
「무슨 뜻입니까.」
「봤지?」
다 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는 남자의 모습에 현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처음으로 했을 때 말이야, 다 끝나고 난 뒤에 녀석이 부탁을 하더군.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제발 차기 가주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고.」
「…….」
「처음엔 형님이라서 내숭을 떠는 건가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
「저기….」
「근데 네 얼굴을 보니까 알 것 같네. 그게 뭔지 가르쳐 줄 생각은 없지만.」
「저기요.」
「김회장 용무로 왔지? 그거라면 안 그래도 준비 중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전해 줘. 아, 참. 그리고.」
이번에도 보수는 잘 받았다고도 전해 주고.
울컥하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본가로 돌아온 현오는 최비서에게 현우를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최대 주주와 호텔로 들어선다든가 예의 남자의 집에 다시 드나드는 현우의 사진을 보고 받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현오는 어렵잖게 최근 순조로웠던 자신의 행보의 원인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하아…….”
현우가 나간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현오가 쇼파 위에 드러누웠다. 사실의 전말을 알게된 후 처음엔 현우가 미친 듯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리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자신이었다.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남자에게 안기던 현우가 떠올라 몸이 달아올랐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이의 모습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은 채 숨을 색색 몰아쉬던 현오는 이내 눈을 뜨고선 손에 쥐고 있던 현우의 머리끈을 바라봤다.
네가 어울리는 건 땋은 머리일까, 아니면 밤인 걸까.
*
그 뒤로 현우는 며칠 동안 자신의 방에 오지 않았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예삿일에 괜히 더 조바심이 나는 기분이었다. 현오가 지내는 별채의 고용인에게 오늘도 현우 도련님은 늦게 들어오실 거라는 보고를 받은 현오는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뒤로 하고 별채로 향했다. 무작정 기다려서라도 오늘은 얼굴을 꼭 보고 무슨 말이든 해 볼 생각이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
현우가 지내는 방 쇼파에 앉은 현오는 고용인이 내온 찻잔을 내려다봤다. 이제야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현우가 오려면 아직 멀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용인의 보고가 잘못되었던 것인지 현오가 하릴없이 찻잔과 방 내부만 둘러본 지 30분이 조금 지나자 어딘가 숨이 차 보이는 현우가 급하게 방에 들어서더니 쇼파 위에 주저앉았다.
“기다리고 계신다길래요.”
“약속 있던 거 아니었어?”
“뭐, 약속 나름이지요. 그나저나 웬일입니까.”
현오 당신이 절 먼저 찾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까.
현우가 어쩐지 쓰게 웃자 현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늘 자신을 먼저 찾는 건 현우였다. 얼마나 오랜만에 이 방에 온 건지 처음엔 인테리어가 낯설었을 정도니.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현우에게 현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저기, 현우야.”
“무슨 일이시길래 그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그게…….”
입도 대지 않은 애먼 찻잔 표면을 현오가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무언가 담판을 지으리라 하고 오긴 했지만 그 날의 현우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동생’ 현우의 모습에 도저히 입이 마음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한참을 말을 않는 현오를 보며 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현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감을 잡았다는 듯이.
“…몰랐으면 했는데.”
“현우야.”
“결국 알아챈 눈치네요.”
현우가 다시금 씁쓸하게 웃었다. 어쩐지 최비서님이 최근에 자꾸 저를 따라 다닌다 싶었는데. 현우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되려 전전긍긍하고 있는 현오를 바라봤다.
“더럽습니까?”
“아니, 현우야 그런 문제가….”
“그러면 뭐가 문젠데요? 차기 가주도 아시다시피 이제 더 이상 당신 앞도 내 앞도 걸리적거리는 게 없는 걸로 아는데.”
“…꼭 그런 방식만 있는 건 아니잖아.”
어딘가 나무라는 듯한 현오의 말투에 현우는 눈을 잠시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활짝 휘며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현오 당신처럼 깨끗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
“권력은 어떤 형태든 나쁘지 않습니다.”
현오가 무심코 표정을 굳혔지만 현우는 개의치 않으며 현오의 앞에 놓여 있던 녹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역시 식으니까 맛이 없네요, 하고 중얼거리던 현우는 다시 고개를 들어 현오와 시선을 맞췄다.
“나에게 경멸을 서슴지 않던 사람들은 이제 밤마다 발정이 나서 내 발등을 핥기를 자처하지요.”
“현우야.”
“나를 쥐고 못살게 굴 때 쓰던 권력을 이제는 밑바닥까지 끌어모아서 내게 주려 안달이 난 걸 보면 우스워 죽을 것 같습니다.”
현우는 청아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로 웃기다는 양, 순수하게 웃던 현우는 숨을 색 고르며 현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예의 웃음을 잔뜩 입에 걸고서.
“그래도 제일 재밌는 건 말입니다.”
“…….”
“현오 당신이 그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줄곧 나를 지켜봤다는 겁니다. 내 손이 닿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진다거나 하던 최근의 부쩍 부자연스러웠던 행동, 이제는 이해가 가네요.”
내가, 들키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데.
짓씹듯이 꾹꾹 무언가를 눌러담은 목소리로 현우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날 가지고 무슨 상상을 하셨습니까, 차기 가주.”
“그건…….”
“그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날 헤집고, 쑤시고, 범하고, 더럽히는 그런 상상을 하셨습니까? 그런 날 상상하면서 혼자 침대 위에서 탁한 숨을 토했습니까?”
현오는 어쩔 줄 몰라하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어렴풋이 상상은 하고 있었지만 노골적으로 어른의 말을 입고 담는 현우는 역시 낯설었다. 설령 매일 밤 그런 현우를 상상하며 앞섶을 적셨다 하더라도. 언뜻 얼굴이 붉어진 현오가 잔뜩 굳은 채로 뭐라 말을 잇지 못하자 하아, 긴 한숨을 내쉰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현오가 있는 쪽으로 와서 어깨를 밀쳐 쇼파 위에 눕히고선 그 위에 올라타서 앉았다.
“천한 아귀들한테도 굴린 몸 당신한테 못 낮출 이유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지금.”
“…현우야.”
“모럴로 뭉친 당신한테는 생소할지 몰라도, 남자 뒷구멍 맛도 생각보단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나는….”
현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우가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갰다. 여전히 굳어 있던 현오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자 골이 난 건지 현우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선 현오의 하반신과 닿아 있는 엉덩이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순간 작은 탄성이 터짐과 동시에 현오의 입술이 벌어지자마자 현우는 혀를 밀어 넣었다. 망설임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현오의 설은 혀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잔뜩 옭아매고 늘어지며 현우는 현오의 얼굴을 섧게 더듬거리다가 잠시 입술을 뗐다.
“…한때는 생각하기도 했지요. 당신에게 처음을 주고, 연인마냥 애틋하게 입 맞추는 것을.”
어쩐지 애달프게 웃는 모습에 아랫입술을 혀로 훔치던 현오가 입매를 굳혔다. 현오의 뺨, 눈가, 턱선을 차례대로 손가락으로 훑던 현우는 마지막으로 타액에 젖은 입술까지 어루만지고선 현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온전히 당신 것이 될 수 없다면, 당신만은 평생 모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현오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현우가 무너질 듯 중얼거렸다. 방금 전까지 오갔던 열기가 무색할 정도로 현우는 착 가라앉은 채로 현오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에 현오는 슬슬 이성을 찾아가는 듯한 현우를 조심스레 떼어 놓으려 했지만 문득 중얼거린 현우의 말에 모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걸로 당신한테 도움이 됐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오롯이 기뻐하겠지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현오는 순간 숨을 멈췄다. 진중하지 않은 문장이었지만 심장이 지하 끝 층에 처박힐 만큼 절절한 고백이었다. 자신이 속 편한 착각을 하는 동안 아이는 애어린 몸을 팔아 자신을 지켰다. 사람들이 현우를 더럽다고 손가락질한다면 자신은 그 손가락을 분질러서 지르밟아도 모자랐다. 그래도 모자랄 판에 어설픈 욕정일랑 품고서, 너에게 훈계를 하려던 나를 보며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게 미동하고 있는 현우의 어깨를 손으로 다독거리던 현오는 이내 현우의 뺨을 감싸올려서 입술을 포갰다. 현우가 말했 듯이, 연인마냥 애틋한 마음을 담아. 아까보다는 느긋하고 길게 입을 맞추다 먼저 떨어져나간 현우는 현오를 내려다보며 잔잔하게 웃었다.
“이제야 안아 주실 겁니까?”
저, 17년 기다렸습니다.
투명하게도 웃는 얼굴에 현오는 오히려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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