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현우] 사막을 건너는 법| # DUNGTEA 2014. 9. 25. 03:19
“아, 그러게 조심 좀 하라니까! 현우 넌 설거지 할 때마다 그릇 깨는 것 같다?”
“주작공자 말은 똑바로 하시죠. 매번은 아닙니다?”
손에서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바닥에서 와장창 깨진 그릇을 바라보던 현우가 입술을 비죽거렸다. 애초에 평생 해오질 않은 일인데 잘 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파편을 주우려 손을 뻗으며 잔뜩 툴툴거리는 현우의 말에 어련하겠냐는 듯한 시선을 던지던 은찬이 이내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고새 또 베였어?”
날카로운 선단에 벤 손끝에서 스물스물 피가 새어 나왔다. 은찬이 황급하게 구급상자를 찾아서 꺼낸 밴드를 받아든 현우는 덤덤하게 상처에 발랐다. 사실 현우에겐 상처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하지만 유독 따끔거리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던 현우는 갑자기 방에서 튀어나온 가람이 짜증스레 내던진 자신의 폰을 바라봤다.
“야, 현무. 전화 좀 받아라. 아까부터 더럽게 걸려오네.”
“아까부터요?”
가람이 던진 폰을 주워든 현우는 순간 인상을 지푸렸다. 발신자 본가. 뜨거울 정도로 열이 오른 감촉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사막을 건너는 법
written by. 르헨
“그래서. 어디쯤이랍니까?”
“조만간 지사로 사용할 예정이던 현무가 소유의 신설 빌딩입니다.”
시멘트 독도 빠지지 않은 새 건물을 무덤으로 택하다니, 취향 한 번 고약했다. 초조하게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던 현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현우에게는 이질적이기만 한 도시의 정경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흘리던 현우는 방금 전 했던 통화 내용을 곱씹으며 찬찬히 머리를 굴렸다.
「지난 번 홍콩 건 기억나겠지. 아무래도 헤드는 다른 쪽이었던 모양이야. 씹, 어쩐지 일 치려던 규모에 비해 너무 조무래기다 싶었지.」
「…그래서요?」
「결국은 배후 꼬리를 잡아서 다시 너를 부르려 했는데 현오녀석이 한사코 말리더구나. 아이에게 연속으로 그런 일을 시킬 수 없다고. 대신 자기가 가문 사람들을 데리고 처리하겠다고 나선 게… 어제였지.」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봐요. 내가 당신을 일단은 회장직에 앉혀 놓은 건 그 권력으로 차기 가주를 지키라는 의미였을 텐데요. 틀립니까?」
「…….」
「당신의 처분은 일단 차기 가주를 찾고 생각해 보죠. 그 인간들 면상이랑 건물 위치 찍어 보내세요. 차도 당장 보내고. 그리고 지금 집안에 남아 있는 손 전부 거기로 보내세요. 미리 잔챙이들 정리 좀 해 놓으란 뜻입니다.」
미련한 구석이 있는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은 절대 달갑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던 현오의 눈을 현우는 똑똑히 기억한다. 검붉은색이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현오는, 순전히 자신을 위해 몸을 던진 게 분명했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현우가 손으로 이마를 짚자 다소 걱정스런 눈빛으로 뒤를 힐끔거리던 수행비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면 그쪽으로 차를….”
“…아니요. 그 전에 잠시 들릴 곳이 있습니다.”
논현동으로 가 주세요.
현우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입안이 꺼끌거렸다.
“후계자님 얼굴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농담 따먹기 하려고 온 거 아닙니다.”
현우가 거실로 들어서자 사내는 자신의 옆에 앉아 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깔깔거리던 여자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뭔가 칭얼거리는 여자의 가슴에 수표를 몇 장 꽂아 주는 질 나쁜 행동에 인상을 찌푸린 현우의 옆으로 어느새 표정이 밝아진 여자가 스쳐 지나갔다. 좀처럼 인상을 펴지 않고 서 있는 현우에게 사내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한숨을 내쉰 현우는 별수 없다는 듯 사내의 맞은 편 쇼파에 앉았다.
“안부 인사나 하려고 들린 건 아닐 테고.”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 아아. 알잖아. 나 원래 집안사람들 싸움에는 안 끼는 거. 워낙에 다들 위험하신 분들이라 누구든지 척 지는 건 사양이거든. 아무리 내가 잘나가는 주술사라고 해도 목숨 아까운 건 알아서 말이야.”
“그렇게 현명하신 분이라면 제대로 된 줄타기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설마, 주술도 못 하는 후계자 따위의 썩은 동아줄을 잡으라는 건 아니지?”
현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지만 사내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농담이야, 농담. 표정 풀어, 귀여운 얼굴 다 망가진다. 시종일관 진지하질 못하는 사내의 태도에 현우는 입술을 꾹 깨물고선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초에 이런 남자에게 부탁 따위가 먹힐 리가 없었다. 시간 낭비만 했다는 생각에 현우가 빠르게 발걸음을 떼려하자 혀를 끌끌 차던 사내가 조악하게 웃었다.
“뭐야. 그냥 가도 괜찮은 거야? 후계자님 차기 가주라면 죽고 못 살잖아.”
“…원하는 게 뭡니까?”
“글쎄…….”
안경 아래의 눈이 비릿하게 번득거렸다.
“그 질문의 답은 예전부터 쭉 언질을 준 것 같은데.”
사내가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주먹을 꾹 움켜쥐고 입술을 짓씹던 현우는 이내 현관문 쪽에 서 있던 수행비서에게 나가라는 턱짓을 했다.
“시간이 없다는 걸 감안해 주시죠.”
“뭐… 이러는 편이 더 재밌으니 나야 상관없는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현우가 사내의 바지 버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이 조금 떨렸다. 낮은 웃음소리가 현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깟 몸뚱아리쯤이야 어떤 식으로 굴려지든 상관이 없었다. 단지 줄 것이라곤 해질 대로 해진 순정뿐인데 이제 그것마저 없어지겠다는 생각에 조금 서러울 뿐. 머릿속에서 최대한 현오를 지운 현우가 눈을 꾹 감았다.
어차피 당신을 위해 있던 것이니 당신을 위해 없어져도 틀리지 않다.
“대가에 비해 할 일이 너무 거창한데.”
비서가 건넨 장갑을 손에 끼던 현우가 짜증스런 눈빛으로 옆에 서서 건물을 위아래로 훑는 사내를 째려봤다. 일부러 엄살을 떠는 게 뻔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현우는 여전히 뻗대고 있는 사내를 지나쳐서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본가에서의 연락에 의하면 6층까지의 잔챙이들은 가문에서 보낸 사람들이 처리 중이니 자신은 바로 현오가 있는 7층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품 안에 손을 넣어 금속 물체를 만지작거리던 현우는 건물에 막 들어서다 말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멈춰서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봐, 후계자님.”
“용무가 남았습니까?”
“너무 매정하게 굴지 말라고. 그냥 사이도 아닌데.”
“용건만 간단히 하십쇼.”
“너무 그렇게 필사적으로 굴지 마.”
그런 식으로 귀엽게 구니까 나 같은 게 꼬이는 거 아니겠어.
어딘가 비소가 섞인 사내의 말에 코웃음을 친 현우는 대꾸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한 차례 쓸려 나간 1층의 공기가 탁했다. 새 건물 특유의 시멘트 냄새와 피 냄새가 섞인 악취에 인상을 찌푸리던 현우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1층에 멈춰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마중을 보낸 모양이었다.
‘7층입니다.’
건물 어디선가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곤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주위는 조용했다. 더 볼 것도 없이 제일 안쪽 방으로 걸어간 현우는 문고리를 쥔 채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선 문을 열었다.
“이제 오나?”
“…숙부님 오랜만입니다.”
이미 사진으로 확인했던 남자가 빈 사무실에 유일하게 놓여 있는 책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징글맞게 웃고 있었다. 좌측으로 두 명, 우측에 한 명. 빠르게 수를 헤아린 현우는 초조하게 눈을 굴렸다. 보여야 할 현오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현우의 기색을 눈치 챈 건지 남자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아. 차기 가주를 찾나?”
현우가 대꾸 없이 가만히 노려보기만 하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던 남자가 우측에 있던 사내에게 턱짓을 했다. 책상의 뒤로 간 사내가 몇 번 발길질을 하자 꼴이 만신창이가 된 현오가 굴러 나왔다. 그간 기절해 있었던 건지 몸을 강타하는 충격에 그제야 눈을 뜬 현오는 현우를 바라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우의 이가 부득 갈렸다. 여전히 자신이 우위를 선점했다는 도취감에 젖어 있던 남자는 천연덕스럽게 입을 뗐다.
“너무 그렇게 보진 말지. 그나마 메인디쉬라서 제일 깔끔하게 놔둔 거니까. 전채들은 이미 썰려 나간 지 오래라네.”
“그깟 사업 놀음 하나 때문에 감히 차기 가주와 저를 건드리시는 겁니까?”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를. 애초에 사업 확장 같은 거, 눈속임이었는걸.”
꼴에 후계자라고 날뛰는 무능한 꼬맹이랑, 그딴 꼬맹이를 등에 업고 까부는 차기 가주님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있어야지.
남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입술을 씹던 현우도 이내 따라 웃었다. 감이 좋지 않더라니, 그런 류의 일일 것이라 예상은 했다. 현우는 남자의 성기가 거칠게 쓸고 지나간 탓에 헐어버린 입 내벽을 혀로 훑어 올렸다. 헐어버린 게 뒷구멍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게 자명해지는 순간이었다. 현우는 저도 모르게 통유리로 된 차창 너머로 사내가 버티고 있을 건물 아래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여유롭네 그래? 컸다 이건가. 내 집 뒷간에서 우리 아들들한테 엉망이 되던 게 어제 같은데.”
“추억팔이도 좋지만 피차 서론은 짧은 게 좋지 않습니까?”
“뭐야, 옛정을 생각해서 가는 길 최대한 끌어 주려고 했더니.”
남자가 책상에서 내려와 똑바로 서자 양 옆으로 있던 사내들이 한 발 앞서 나왔다. 서로 눈치를 살피던 사내들이 손을 앞으로 조금 뻗었다. 아마 주술을 쓰려는 듯했다. 픽 웃음을 흘린 현우는 개의치 않으며 사내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에 당황한 사내들은 황급하게 팔을 휘저었고 이내 더더욱 당황한 표정으로 굳었다. 현우의 미소가 짙어졌다. 지금껏 여유롭던 남자도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지 당황한 기색이 만연했다. 와락 웃음이 터지려는 걸 꾹 참은 현우는 남자가 그랬듯이 천연덕스럽게 입을 뗐다.
“주술이라는 건 역시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가지지 못한 게 눈물 나게 억울할 만큼.”
“이, 이게 무슨….”
“주술이 주술로 막힌다는 생각, 해 보셨습니까?”
현우가 난감함으로 그득한 사내들의 얼굴을 보며 왼쪽 입꼬리를 틀어올렸다. 다 같은 주술가라 해도 그 능력치에는 분명히 우열이 있다. 부리는 사람 마음대로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능력 스펙트럼의 경계 역시 불분명하다. 힘에서 우위에 있는 쪽에 약한 쪽의 주술이 막히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단지 ‘무술가 후계자’ 에 대한 사내들의 계산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뿐.
“그렇게 얼빠진 표정들을 보니 값싼 입동냥의 대가치고는 썩 괜찮은 것도 같네요.”
혀를 내어 입술을 훑던 현우가 무심코 현오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결국은 당신을 위한 것이었으니 언제든지 경멸스런 시선을 받더라도 괜찮다. 현우가 착잡하게 웃었다. 마음을 겨우 추스른 현우는 고개를 빳빳이 들어 어쩔 줄 몰라하는 사내들과 맨 뒤에 서서 어느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제 숙부를 바라봤다. 자신들의 능력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잘나신 주술가들의 오만이 오늘만큼은 행운의 패였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 잠시! 윽…!”
“사람을 죽이는 건 무술도 주술 못지않다는 거.”
주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내들은 우후죽순 쓰러져 나갔다. 사내들의 목을 자근자근 밟고 팔을 꺾어 부수던 현우는 어딘가 멍하게 그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현오를 흘겼다. 언제가 됐든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입술을 꾹 깨문 현우는 마지막으로 남은 사내의 목을 비틀고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하고선 책상에 기대 덜덜 떨고 있는 제 숙부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날 성 싶어 현우는 허무해지기까지 했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재던 주술이 쓰레기가 된 기분은.”
“너, 너 어떻게…!”
“이런. 천한 무술가는 주술가한테 부탁도 못 하는 겁니까?”
느긋하게 남자에게 다가선 현우는 이내 눈을 번득이며 남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살집이 뒤룩뒤룩한 몸이 공중에 조금 뜨자 구역질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에 혀를 끌끌 차던 현우는 쥐고 있던 몸뚱아리를 바닥에 처박고 등 위를 지긋이 밟아 눌렀다.
“허, 허윽……!”
“역시 아무래도 숙부님은 제 손으로 보내기 죄송스러워서 말입니다.”
사내의 뒷목을 발로 밟아 고정 시킨 현우는 도포 안으로 손을 넣어 글록을 꺼내들었다. 총을 손에 쥔 채로 잠시 이리저리 살피던 현우는 이내 픽 웃으며 해머를 잡아당겨 장전 시킨 뒤 허리를 숙였다. 급하게 숨을 들이키며 벌벌 떠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차던 현우는 피에 절은 머리채를 잡아 올린 뒤 총구를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보기가 제법 좋습니다, 숙부님.”
“제, 제발 살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딴 총 말고 제 손으로 당신 뼈 하나하나 발라서 죽이고 싶습니다. 내 가주를 감히 건드린 손, 마디마디 씹어 먹어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단지….”
말끝을 흐린 현우가 복잡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현오를 한 번 바라봤다가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
“…단지 내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빨리 끝내려는 겁니다. 다행인 줄 아세요.”
침까지 흘리고 있는 얼굴을 무미건조하게 내려다보던 현우가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채로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를 장착한 둔탁한 발포성이 내부를 메웠다. 깔끔하게 관자놀이에 박힌 총알을 두개골을 박살냈고 희멀건 뇌수가 바닥에 퍼졌다. 꿈틀거리던 손가락의 작은 미동이 곧 잠잠해졌다. 주위는 고요했다. 커다란 사무실 안에서 멀쩡하게 숨을 쉬고 있는 건 현오와 현우 자신뿐이었다. 숨을 고르며 장갑을 벗던 현우는 무심코 현오와 시선이 얽혔다. 현오는 어쩐지 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우가 지독스럽게도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입술을 한 번 꾹 씹은 현우는 벗어낸 장갑을 바닥에 내팽겨치고 현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우가 바로 발치 앞에 서자 천천히 고개를 든 현오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멍 자국이 남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가만히 그 꼴을 내려다보던 현우는 손을 들어서 현오의 뺨을 내려쳤다. 고개가 밑으로 확 꺾인 현오는 그 상태로 가만히 숨을 몰아쉬었다. 늘 정갈하던 평소와 다르게 잔뜩 흐트러진 와이셔츠 이곳저곳에 피가 배어 있었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시선을 위로 두고 숨을 고르듯 색색거리던 현우는 이내 안 되겠는지 탁한 숨을 터트리며 현오의 멱살을 잡은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 하자는 겁니까, 차기 가주.”
“현우야.”
“이런 일은 내가 한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총으로 사람의 머리통을 날릴 때도 태연자약하던 현우였다. 그랬던 현우가 현오의 셔츠 깃을 쥔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눈가가 잔뜩 빨개진 채로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셔츠 깃을 꾹 움켜쥔 현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당신이 물었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
“현오 형.”
…나는 당신이 이 꼴 당하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까지 아둥바둥 버틴 겁니다.
자신이 주술가로서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칫하면 후에 가문 사람들의 광기 어린 정의에 죽임 당할 수도 있다는 것보다, 그런 자신이 고른 현오 역시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현우를 미치도록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현우가 무술을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살 방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닌 살릴 방도를 찾기 위하여.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그 와중에 살이 찢겨나가는 것도, 더러운 모멸을 받아내는 것도, 현우 자신의 몫이었다.
“차기 가주.”
“……어, 현우야.”
“제발 내가 후회하게 만들지 마세요.”
당신에게 가시밭길이 될 줄 알면서도 현오 당신을 고른 건, 내 인생을 건 선택이었습니다.
현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뜨면 무슨 일이라도 날 듯이. 이제 거의 자신의 품에 쓰러지다시피 매달려서 격양된 숨을 몰아쉬는 현우를 내려다보던 현오가 창백하게 질린 뺨을 감싸 올렸다. 잔뜩 일그러진 눈이 그렁그렁했다. 바스라질 듯한 기분에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현오는 피가 엉겨 붙어 있는 뒷통수를 끌어당겨서 안았다.
살을 에는 고문에도 현오는 줄곧 현우의 걱정만이 머리에 가득 차 있었다. 시시한 주술가쯤이야 현우의 상대가 안 됐지만 그게 아니라면 얘기는 다르다. 현오는 자신의 눈 앞에서 거들먹거렸던 사내가 줄곧 현우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 있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현우만은 부디 오지 않기를 빌었다. 현우는 약하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다른 주술사를 대동한 건 퍽 의외의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현우야.”
“변명 같은 건 듣기 싫습니다.”
자신을 안고 있던 현오를 떼어낸 현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쓴 웃음이 현오의 입에 걸렸다. 현우가 가문의 뒤처리를 하는 걸 직접 보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이가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차기 가주로서 언제까지 문외한일 수는 없다는 이유로 현장에 따라다니기 시작한 이래, 현오는 서류 더미 속에서 힘들다 한탄하던 자신의 팔자가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현우는 일이 끝날 때마다 운이 좋으면 외상이 없었고 운이 나쁠 때는 온 몸에 타박상을 입은 채 나오곤 했다. 처음으로 피칠갑한 아이를 본 날, 현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런 자신을 보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주먹을 꾹 쥐고 괜찮다는 듯 웃던 아이는 그 다음부터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그러곤 일이 끝나자마자 장갑을 벗어서 버리고 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혹여나 또 피가 묻었을까. 그런 현우의 모습 하나하나가 현오를 늘 못 견디게 만들었다.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른 현오가 느릿하게 입을 뗐다.
“변명 같은 거 안 할게. 이번 건은 내가 잘못했어.”
아이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현오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했다. 이번만큼은 현우의 손을 빌리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닥친 무력의 차이는 생각보다 너무 커서, 현오는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의 생사여부를 떠나 혹시라도 자신을 찾으러 온 현우가 어떻게 될까봐 몸이 달달 떨릴 정도로 겁이 났다. 주술로 생살이 베인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칼 따위에 베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눈을 한 번 깜빡였다가 뜨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눈앞에서 사람들의 사지가 잘려나가는 걸 보던 현오는 신께 감사했다. 현우가 지금껏 무사하게 살아 있는 것을. 가업과 가문 같은 거,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현오 당신 정말…!”
뭔가 뭐라 말을 더 하려는 현우의 몸을 와락 끌어안은 현오가 조금 흐느꼈다. 자신에게 내걸었다던 선택의 무게는 아이에게 너무 가혹했다. 그럼에도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선연하여 현오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현우야.”
“…….”
“…미안해.”
오롯이 나 하나만을 탐내는 네가 너무 기뻐서, 네가 송두리째 망가질 것을 알면서도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뒷말은 삼킨 현오가 아프게 웃었다. 젖은 눈으로 웃는 현오를 올려다보던 현우도 곧 따라 웃었다.
곁에 있어도 여전히 서글픈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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