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이치] 상실의 시대 # OSOMATSU 2015. 11. 8. 05:04

※날조 주의, 오소마츠 유부남 주의






상실의 시대

written by.르헨





“살이 더 빠졌네…….”

“그런가.”

“응. 교토로 출장 가는데, 뭐 먹을 거 좀 사다 줄까?”

“괜찮아.”



내 턱을 쥐고 이리저리 돌려보는 형의 표정이 좋지 않다. 살이 빠졌나? 아마 그럴 거다. 5년 전인가 그쯤에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었는데 그 뒤로 다시 올라가지 않는다. 원래 등이 굽은 편인데 살이 빠진 후로 더 꼴사나워졌다. 부끄러워서 이불을 끌어다 몸을 덮었다. 혀를 끌끌 차던 형은 내가 덮은 이불 안으로 들어와서 허리를 끌어안는다. 팔 차가워. 핀잔을 줬지만 형은 듣지도 않고 내 어깨에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형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고 나를 봤다.



“참. 이스케 어린이집 다닌다?”

“……그래?”

“응. 이제 말도 제법 잘해.”

“그렇구나.”



갑자기 피가 식는다. 내가 말이 없어지자 형이 위로 올라탄다.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시선을 피해서 고개를 돌렸다. 궁금했다. 형은 갑자기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저런 얘기를 불쑥 던지는지. 애새끼처럼 짜증이 난다. 나는 형제들 중에 가장 미성숙한 편이다. 고개를 숙인 형은 내 볼에 입술을 지분거렸다. 간지러워서 얼굴을 빼려고 하자 내 턱을 꾹 쥐고 돌린 형이 입술을 포개온다. 진득하게 할 생각을 없는 건지 혀를 내어 입술을 몇 번 핥기만 하던 형은 얼마 가지 않아 떨어졌다.



“내가 까먹었었네.”

“……뭐가.”

“나한텐 애가 둘이라는 거.”



그 애가 나를 가리킨다는 걸 깨닫자마자 형 어깨를 확 밀어냈다. 저 멀리 밀려난 형에게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형은 늘 저런 식으로 다시 내 마음을 죈다. 내 심장을 꺼내서 보면 형의 손자국이 남아 있을 거다.


내 위에 있던 형을 옆으로 밀어내고 뒤돌아 누워서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었다. 그 어릴 적 마스크를 썼던 때처럼. 형과 나만 있을 때처럼. 형이 다시 내 등 위로 올라탄다. 엉덩이가 조금 들렸다. 닳은 관계였다. 다리를 벌리는 형의 손길에 몸을 부르르 떨며 베개에 얼굴 전체를 파묻었다. 이제는 울지 않고선 섹스할 수 없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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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행은 5년 전 형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여섯 형제는 썩 유능한 편은 아닌데, 그래도 형은 장남이라 그런지 좀 달랐다. 고등학교 막판에 공부를 독하게 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한 형은 결국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 나는 그냥 적당히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적당히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어쨌든 내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함으로써 형과 나는 둘이서만 나와 살았다. 형의 학교와 내 직장이 가깝다는 핑계였다.


동갑의 쌍둥이 6명에게 부모님의 애정이 골고루 돌아오긴 힘들었다. 특히 형과 나. 카라마츠는 어딘가 엉성해서, 쵸로마츠는 말을 잘 들어서, 쥬시마츠는 타고나길 착해서, 토도마츠는 귀염성이 있어서. 뭐 각자 그런 이유로 부모님의 관심이나 사랑을 가져갔다. 우리랑 몇 분 차이 나지도 않는 형은 그저 첫째라는 이유로 애정을 갈구하기보다는 동생들을 챙기는 포지션이었다. 부모님이 그러길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글쎄. 그냥 미운 오리여서였나 모르겠다. 아마 부모님은 나를 딱히 예뻐하기 싫었던 건 아니었을 거다. 다른 형제들이 너무 많고 예뻐서였겠지.


형도 그걸 알았다. 부모님의 양손을 나머지 형제들이 잡고 있으면 형은 조용히 나한테 와서 내 손을 잡았다. 그때부터 형의 손자국이 내게 남았다. 형은 부모님의 바람답게 의젓했지만 때때로 한없이 아이 같았다. 겉으론 태평하게 굴지만 그 속에 뿌리박힌 열등감이 있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린 부족한 애정을 서로에게서 채웠다.


형은 거의 매일 토도마츠와 자리를 바꿔 내 옆에 누워서 잤다. 둘이 손을 잡고 자기 위해서였다. 나머지 형제들이 잠들면 형이랑 한 이불 속에서 속닥속닥 얘기를 나눴다. 형은 내 이불에서 나가기 전에 잘 자라고 인사한 뒤 내 볼에 뽀뽀했다. 그러면 나도 형의 볼에 뽀뽀했다. 그게 자기 전 인사였다. 그러면 배에 열이 뭉쳤다. 나른해지면서도 이상한 감각이었다.


조금 더 크고 나서야 그게 욕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교복을 입게 됐을 무렵엔 내가 형의 이불로 들어갔다. 그러고선 형의 성기를 빨았다. 딱히 누가 그렇게 하자고 말을 꺼내진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어설프게 펠라를 하면서 나는 발뒤꿈치로 엉덩이 사이를 꾹 문질렀다. 웃기게도 난 박히는 쪽이 되고 싶었다. 우리는 다른 형제들이 깰까 봐 입을 꾹 틀어막고 서로를 더듬었다. 중학교 때의 기억은 그런 축축한 장면밖에 없다. 고등학교라고 다를 건 없지만. 아, 고등학교 땐 진짜 했다. 집에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까, 한밤이나 일요일 이른 아침에 둘이서 화장실에서 문 잠그고.


형과 나는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어느 정도 벽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다. 어릴 때처럼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애틋해지진 않았다. 분가도 의외로 쉽게 허락받았다. 쥬시마츠나 카라마츠가 조금 많이 서운해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평탄하게 지냈다. 형이 오후 수업인 날엔 아침에 출근하는 날 위해 아침을 차리고, 형이 동기들이랑 술이라도 먹고 뻗으면 내가 데리고 와서 잔소리하고. 둘 다 한가한 주말엔 자다 일어나서 섹스하고 또 자다가 밥 먹고 또 섹스하고 잠들고 그랬다. 아마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매 순간이 충만했던 때였다.


형은 대학교도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한 건지 어렵지 않게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일본에서 꽤 알아주는 IT기업이었다. 덕분에 부모님의 관심이 형에게 쏠렸다. 그게 문제였다. 우리 형제는 다 그럭저럭 자기 앞가림은 했지만 그중에 형이 제일 성공한 축이었다. 부모님은 형이 취업했던 때부터 형이 얼른 괜찮은 집 여자와 결혼하길 바랐다. 당연히 형은 쌩깠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무슨 결혼이냐고 매번 거절했다. 그러다가 형이 어느 날 어떤 아가씨 사진을 받아왔다.



「……누구야?」

「엄마가 선보라고 준 사진.」

「뭐?」

「이치마츠.」



내가 따지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형이 전에 본 적 없던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엄마가 물었어.」

「…….」

「너네 그런 거냐고.」



뭐라고 딱 지칭하진 않았지만 형이 말하는 ‘그런 거’의 의미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입을 꾹 다물었다. 형도 말이 없었다. 형은 그 다음 날 내가 자는 사이에 나갔다. 일어나자마자 형의 정장 옷걸이가 하나 비는 걸 보고 온종일 울었다. 저녁이 돼서야 집에 돌아온 형은 술은 마시 건지 상기된 얼굴을 하고선 팅팅 부은 내 얼굴을 바라봤다.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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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결혼한다고 했다.


형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한 상대측에서 엄마랑 합심해서 어떻게든 밀어붙였다는 것 같았다. 어쩌다 연락한 카라마츠에게서 형의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말도 없이 내 짐만 빼서 집을 나왔다. 원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모텔 같은 데서 며칠 지내다가 다른 도시로 이직한 전 회사동료에게 소개를 부탁해 그쪽에 취직했다. 뒷일은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최소한 형이 결혼하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원래 쓰던 폰도 해지했다.


형의 결혼 예정일이라고 들은 날, 처음으로 자살기도를 했다.


다행인지 뭔지 의지박약으로 인해 상처가 얕아서 살았다. 하지만 흉은 남았다. 그 뒤로도 형이 생각나면 때때로 손목을 그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원래부터 친구는 없었기에 타지에서 혼자 생활한다고 크게 외롭진 않았다. 그냥 아무 느낌도 안 들었다. 살은 계속 빠졌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목엔 흉터들이 띠처럼 빼곡했다. 전의 모습을 아는 동료가 걱정할 정도였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잠들기 전 두 시간 넘게 생각했다. 평생 형을 안 보고 살 수 있을까? 생살이 문드러질 만큼 보고 싶었다. 형이 꿈에 나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몽정했다. 그러다 못 견뎌서 어디서 만난 어떤 남자랑 잤는데 남자는 애무하다 말고 내 손목을 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자기가 지금껏 만난 남자들 중에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기 손목도 보여줬다. 거긴 나랑 비슷한 흉터가 몇 개 있었다. 내가 그냥 눈만 꿈뻑거리자 그 남자는 혀를 끌끌 찼다.



「근데 당신만큼 빼곡한 사람은 처음 봐요.」



다음날 일어나니 남자는 자기 연락처를 적어둔 메모를 남기고 사라진 채였다. 반듯하게 적힌 글씨들을 바라보다가 찢어서 버렸다. 일회성 만남이었지 길게 볼 생각은 없었다. 남자랑 하는 게 오랜만이라 상처가 난 건지 피가 말라붙은 시트를 보다가 손톱을 세워 내 어깨를 할퀴었다. 형에 대한 생각이 짙어질 때 내 몸에 상처를 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남자와 잔 후로 형이 더 보고 싶어졌다. 결국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라마츠에게 연락했다. 내 전화를 받은 카라마츠는 처음엔 놀라더니 나중엔 화를 냈다. 그런 식으로 사라지는 법이 어딨냐면서 말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카라마츠의 말에 의하면 다른 가족들은 내가 사라져서 난리가 난 것만 빼면 다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오소마츠형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내가 어디 사는지 캐물은 카라마츠는 조만간 꼭 만나자는 약속을 내게 받아내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내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나는 참 약은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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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문 앞에 누가 서 있었다. 실소가 터졌다. 사실 알고 있었던 거다. 카라마츠한테 연락하면 형에게도 말이 전해질 거라는 걸. 도망친 지 고작 2년 만에 포기한 거다. 형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한참 동안 복도 끝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냥 다시 도망갈까, 생각했지만 나를 먼저 발견한 형에게 붙잡혔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성큼성큼 걸어온 형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진짜, 죽이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형의 목소리가 축축했다. 꽤 오랫동안 나를 그저 안고 있기만 하던 형에게선 낯선 냄새가 났다. 그게 불편해서 어깨를 밀어내자 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씹었다. 형은 그런 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잘 지내?」

「응.」

「그래…….」



거의 반강제로 집에 들어온 형은 묻고 싶은 게 있는 듯했다. 아마 그거겠지. 왜 자신에게서 도망쳤는지. 사실 형도 답을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차를 끓이며 곁눈질로 형을 바라봤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땐 아직 사회초년생이라는 느낌이었는데 2년 만에 어른 냄새가 물씬 났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이 낯설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은 뒤 형의 손을 바라봤다. 넷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 나를 몇 번이고 어루만졌던 손은 이제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 있었다. 울컥하는 바람에 고개를 휙 돌리고 형을 등졌다. 등 뒤로 끈덕진 시선이 달라붙었다.



「이리 봐봐.」

「아…….」



형을 바라보는 게 울렁거려서 일부러 시간을 끌며 움직였더니 내 뒤로 다가온 형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반사적으로 손목을 빼냈다. 나도 모르게 손목을 뒤로 숨기자 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보였나? 모르겠다. 평소엔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상관없다는 주의라 흔한 손목시계도 안 차고 다녔던 게 후회된다. 상황을 무마하려고 찻잔을 올려둔 쟁반을 들려고 하자 형이 꽤 센 힘으로 오른손을 잡아챈다.



「……아.」

「이치마츠.」

「미안.」



뭐라고 말하려는 형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고 주저앉았다.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참는 게 맞았다.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펑펑 울었다. 밖에서 형이 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열라고 소리치던 형은 나중엔 빌었다. 제발 문 좀 열라고. 대답도 못 하고 그냥 고개만 저었다. 되돌리긴 늦은 거다. 애초에 시작이 잘못됐으니 끝이 나쁠 수밖에 없는 거다. 어떤 정상적인 형태로 관계가 회복되길 바란 건 내 망상이었다. 왼쪽 소매로 오른쪽 손목을 박박 문질렀다. 이건 형의 흔적이다. 덧대고 또 덧대어져서 영영 사라지지 않을 거다.


그나마 눈물이 멎었을 때 주위는 고요했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난 걸까? 혹시 다음날이 돼서 형이 돌아간 걸까? 무릎으로 기어서 문 앞으로 갔다. 문에 귀를 가져다 대자 밖이 잠잠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갔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형은 쇼파에 앉아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형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좀 이상했다.



「이치마츠…….」

「형.」



형이 나른하게 웃는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조금 떨구자 바닥에 고인 핏물이 보였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응급키트를 찾아와서 하얀 지혈제 가루를 형 손목에 몽땅 부었다. 몇 번이나 헛손질해가며 벌어진 손목에 붕대를 감고선 벌떡 일어섰다. 그제야 구급차를 부를 생각이 들었다. 식탁 위에 있는 전화기를 가지러 가려는데 형이 멀쩡한 손으로 나를 잡았다.



「너는 병원 안 갔잖아.」

「무슨…….」

「……내가 너 병원진료기록까지 다 뒤진 건 모르지? 씨발…병원을 한번 안 가냐. 독한 게.」



형이 피식거린다. 그게 어지간히 뒤틀려 있어서 움찔했다. 이거 되게 아픈데 그렇게 많이 어떻게 했어? 목을 뒤로 젖힌 형이 중얼거렸다. 느긋한 형을 얼이 빠진 채로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멱살을 잡았다.



「뭐하자는 거야.」

「그냥. 이래야 공평하니까?」

「미쳤어?」

「돌아가자.」



형이 내 목을 끌어안으며 입술을 찾았다. 나는 허겁지겁 형의 바지를 벗겼다. 씨발. 결국 이렇게 될 팔자였다.


형은 결국 그 새벽 병원에 실려 갔다. 의지박약인 나와는 다르게 형의 상처는 꽤 깊었다. 형은 전치 3주라는 어처구니없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쓸데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시 출근하기 위해 돌아가려는 형을 보며 우물쭈물하자 형이 못 박았다.



「다음주 주말에 데리러 올게.」



등신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던 회사엔 사직서를 냈다. 사장은 조금 기뻐하는 눈치였다. 손목에 자해 흉터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직원이 탐탁지는 않았겠지. 아직까지 안 자른 게 용하다. 나 일도 못 하는데. 나를 소개해준 동료에겐 미안하다고 인사했다. 그 사람은 아니라고, 거기 가서는 제발 몸 좀 챙기고 살라고 했다.


그다음 주 주말에 차를 끌고 온 형은 내가 이삿짐을 싸는 걸 도왔다. 별로 많지도 않은 짐은 금방 꾸려졌다. 커다란 박스 서너 개로 정리된 집을 차로 옮기던 형이 중얼거렸다.



「그대로네.」

「뭐가?」

「나랑 살던 때 짐 그대로인 것 같아서.」



……그건 사실이다. 여기 오고 나서는 딱히 뭔가를 사본 적이 없다. 내가 딱히 대답을 안 하고 있자 형은 덤덤한 표정으로 짐을 실었다. 집으로 가는 거냐고 묻자 아니란다. 자기 집 근처에 내가 살 집을 얻었다고 했다. 돈 많아? 물으니까 고개를 대충 끄덕인다. 더 물었다간 좆같은 이유를 듣게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고 운전하던 형은 익숙한 도시에 도착할 무렵 운을 뗐다.



「근데, 나.」

「왜?」

「……애 있다. 3개월짜리.」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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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갔다 왔어. 거긴 네가 좋아하는 게 없길래 그냥 그 동네에서 유명한 집에서 케이크 사 왔어. 이따 집으로 갈게.]



메일을 확인하고 시계를 보자 곧 형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쇼파에 누워 뒹굴던 몸을 일으켰다. 형은 평균적으로 나보다 퇴근이 좀 늦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초인종이 울렸다. 집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매번 저런 식이다. 내가 문 열어 주러 나오는 게 좋다 했나, 그랬다.



“밥 먹었어?”

“아직.”

“그럼 일단 이거부터 먹어.”



형이 하얀 상자를 내 품이 덥석 안겨준다. 아까 말한 케이크인가 보다. 별로 동하진 않았지만 그냥 맛이나 볼까 하고 한 조각 꺼내서 접시에 담았다. 형은 단 거 싫어한다. 식탁의 앉아서 포크로 케이크를 떠먹는 내 앞에 앉은 형이 빙긋 웃는다. 많이 먹어.



“근데 집에는 들렀다가 온 거야?”

“아니. 내일 오는 줄 알아.”

“……아, 그래.”



대화하기를 멈추고 케이크에 집중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불편하다. 아직도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내를 볼 때 내 생각이 날까? 아님 나를 볼 때 아내 생각이 날까? 형은 나에게 집 얘기를 거의 안 했다. 우리 둘 다 의식적으로 피하는 주제였다. 저번엔 이상하게 아들 얘기를 했지만. 그때를 곱씹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속이라도 읽은 건지 형이 입을 뗐다.



“있지 말이야.”

“왜?”

“그게…….”



형이 잠시 망설인다. 내가 찝찝한 표정으로 포크를 물고 이어질 말을 기다리자 한참 입을 움찔거리던 형이 간신히 말을 이었다.



“……이스케 엄마가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해.”

“안 가.”

“그래. 나도 데려가기 싫어.”

“그럼 안 가면 되잖아.”

“내가 말해보고 안 되면 자기가 직접 연락한다고 하더라.”

“……그 여자가 날 왜 보고 싶어 해?”

“……그러게.”



형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야 형이 그때 드물게 아이 얘기를 꺼낸 이유가 이해됐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나 보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나를 무척 좋아한다. 사실 다섯 도련님 전부 다 좋아하는 것 같지만, 유독 얼굴을 비추지 않는 나를 어떻게든 챙기려고 애썼다. 메일도 가끔 오곤 했는데 다 무시했다. 아마 그 여자는 첫째 며느리로서의 뭔가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번호 바꿀 거야.”

“이치마츠.”

“……알겠어.”



내가 억지를 부리자 형이 힘주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터졌다.



“언제 오라는데?”

“다음 주 토요일.”

“……알겠어.”



없던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내가 포크를 내려두자 형이 내 손을 잡아들고선 손목을 핥는다. 상처를 훑는 느낌에 손끝이 덜덜 떨렸다. 손끝에 뽀뽀를 쪽 하고 떨어진 형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스케가 셋째 삼촌 보고 싶다더라고. 그 말에 나도 웃었다. 이내 정색을 하는 내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형이 내 목을 감싸서 당긴다. 나도 맞춰서 형의 목에 팔을 두른다.



“사랑해.”

“응……나도. 형.”



그냥 이대로 같이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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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으로 봤을 땐 거의 신생아였는데 그땐 펑펑 운다고 제대로 볼 여력이 없었다. 애기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당장 다시 차 돌리라고 지랄했는데 형은 내 말을 좆같이 무시했다. 정말로, 이번에야말로 정리할 거라고 다짐했다. 애까지 있는 거면 거긴 내가 낄 자리가 없는 거 아닌가. 근데 형은 그런 게 아니랬다. 결혼을 형식적으로 한 것처럼 아이도 비슷한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형을 한 대 쳤다. 형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볼을 문지르다가 웃었다.



「그럼 이혼할까?」



거기서 야마 돌아서 형을 더 팼다. 정도가 있는 거다. 이혼할 거면 처음부터 시작을 말든가. 물론 그때의 형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나도 그냥 도망쳤던 거다. 형은 진지했다. 정말로 이혼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었다, 그래도. 형이 사준 집에서 나와 모아둔 돈으로 또 모텔 따위를 전전했다.


형에게 아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형을 떠올릴 때마다 형의 아내와 아이가 잔상처럼 붙어서 떠올랐다. 숟가락으로 그 기억이 저장된 뇌 부분을 쏙 파내고 싶었다. 왜 이렇게까지 꼬인 건지 모르겠다. 나는 며칠을 울고 나서야 정리했다. 


나는 좆같은 도덕심을 발휘해서 유부남의 이혼을 막고 불륜에 응했다.


불지옥에 가도 할 말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암묵적으로 우린 최대한 형의 가족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그래도 나는 자주 운다. 형한테 안길 때면 어김없이 운다. 이 행위들이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때가 있다는 게 아득해서 매번 섧다.



“뭐 좋아하냐고 물어봐서 그냥 나랑 비슷하다고 했어.”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를 데리러 온 형이 데려간 곳은 정말로 집에서 가까운 주택가였다. 차고에서 현관문까지 가는 걸음이 무겁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알고 나온 건지 해사하게 생긴 여자가 바로 앞에 서서 방긋 웃고 있었다. 이 여자도 두 번째로 본다. 그때 아이가 신생아일 때 같이 봤으니까. 물론 여자는 나를 처음 보는 거겠지만.



“어서 와요, 도련님.”

“아, 네.”

“이스케, 인사 해야지. 이스케가 보고 싶다던 셋째 삼촌이야.”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작은 인영이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랐다. 신생아 때는 몰랐는데 형을 빼다 박은 얼굴이다. 나와 형을 번갈아가며 보던 아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제 엄마 뒤로 숨었다. 그러고선 생긋 웃는 어린 얼굴이 형이랑 많이 닮았다. 안 그래도 저기압이던 기분이 바닥끝까지 처박히는 기분이다. 씨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정말이지. 저희 결혼할 때도 안 오시더니. 5년 만에 처음 뵙지 뭐에요.”

“그땐 제가 좀 바빠서.”

“아무리 바빠도요. 아, 음식은 입에 좀 맞으세요?”

“네.”

“다행이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음식엔 거의 손도 안 댔다. 여자도 분명 그 사실을 안 텐데 모른 척 받아친다. 성격이 좋은 모양이었다. 여자는 아이의 밥을 챙기느라 바쁜 와중에도 드문드문 형에게 말을 걸었다. 형은 건성건성 대답했지만 여자는 그래도 좋은지 계속 웃는 상이다. 배알 꼴렸다.



“엄마, 엄마.”



차라리 아무 생각도 않기로 하고 멍하게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의자에서 내려 달라고 바둥거렸다. 왜 그러니? 그녀가 아이를 안아서 바닥에 내려주며 묻자 아이는 대답 없이 거실로 뛰어갔다. 의아해진 그녀가 거실로 나가보려는 때 아이가 다시 돌아왔다. 작은 품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가 안겨 있었다. 다시 팔을 뻗어 칭얼거리는 아이를 그녀가 다시 의자에 앉혔다.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스케가 도련님이 마음에 드나 봐요.”

“그런가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스케치북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그녀가 입을 가리며 웃는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서 아이가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닥 궁금하진 않았다.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디저트까지 먹고 가라는 그녀의 권유를 뿌리쳤다. 그녀는 대놓고 아쉬운 기색을 비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형도 얼른 나를 보내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대충 갈무리 하고 현관으로 가려는데 여태껏 엄마에게 꼭 붙어 있던 아이가 도도도 뛰어와서 내 바지자락을 잡는다. 왜? 하는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가 불쑥 뭘 내민다.



“요새 어린이집에서 그림을 배우거든요. 그이랑 저도 두 번밖에 안 그려줬는데 웬일로 도련님을 그렸네요?”

“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서 앉았다. 아이가 내민 종이에는 사람 비슷한 게 그려져 있었다. 나를 닮진 않았지만 옷 색깔이 똑같은 걸 보면 날 그린 게 맞는 거 같긴 했다. 기분이 좀 이상하다.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형을 닮았다. 아이와 형을 번갈아가며 보는데 울컥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다. 형과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의 얼굴을 보며 소원한다.


차라리, 네가 내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아이가 준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자 얼굴을 발그레 붉히던 아이가 다시 제 엄마에게 뛰어갔다. 밑도 끝도 없이 저 자리가 밉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집도 가까운 거 같던데 자주 놀러 오세요.”

“그럴게요.”



맘에도 없는 빈말을 하면서 신발을 신었다. 형은 한사코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냥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형을 거들어서 나에게 차를 타고 가라고 권하던 그녀는 내가 딱 잘라 거절하자 더는 말하지 않았다.



“연락할게.”

“응.”



대문까지 나를 배웅해준 형은 멀어서 잘 안 보일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한참이나 동생을 배웅하는 남편을 보면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까? 복잡하다. 


집은 금방 도착했다.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 맥이 풀렸다. 목이 탔던 건지 제일 먼저 주방으로 갔다. 컵에 따르지도 않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아까 아이가 준 게 생각이 나서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어 폈다.


아이가 준 종이를 내려다봤다. 크레파스 냄새가 났다. 무심코 손가락을 세워 종이의 모서리를 훑었다. 금세 살을 파고든 종이 끝에 핏물이 묻어나온다. 종이에 불균일하게 번지는 붉은 색을 보며 형을 떠올린다. 형을 떠올렸을 때 그녀와 아이가 같이 그려지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목을 조르고 싶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형, 아름다운 형의 아내, 형을 닮은 형의 아이……그리고 나. 가슴 한구석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이 기형적인 관계를 놓지 못한다. 상처를 잡아서 쭉 벌렸다. 종이가 깊이 박혔던 건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아이야. 나의 형과 똑 닮은 아이야.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형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그녀의 치마 뒤에 숨어서 나를 올려다보던 아이. 선물이라며 분내 나는 그림을 내밀던 아이. 아이의 그림을 죽죽 잡아서 짼다. 이건 내 죄악이야. 찢겨진 종이들을 싱크대에 떠내려 보냈다. 힘이 쭉 빠졌다.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형.”



허공에 대고 입을 뗐다.



“잘 자요.”



입술을 내밀어 쪽 소리를 낸다. 그 언젠가 한 이불 속에서 볼 뽀뽀로 형과 작별하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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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소마츠가 유부남인데 슬8애8기8짓하는 게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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