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이치] 연가(戀歌)| # OSOMATSU 2015. 12. 7. 01:45
비지엠 틀어주세요^^.........
※1900년대 초반 어느 때 쯤 배경
※남창 소재 주의+모브이치
네가, 왜, 여기에.
“이치마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당황해서 네 시선을 피했다. 되는 대로 고개를 살짝 숙이자 헐겁게 묶어진 오비 매듭이 눈에 들어왔다. 그거 나름대로 견디기 힘들어 결국 고개를 다시 들었다. 질감 좋은 셔츠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오소마츠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차림이었다.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손님 받겠습니다.”
사실은 시계탑 앞에서 너와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연가(戀歌)
written by. 르헨
유년기 시절의 기억은 전부 번진 붓 자국 같았다.
곰팡이 핀 낡은 벽, 술 냄새가 나는 엄마,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아빠……평범한 불행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늘 나를 두고 불행이라고 했다. 집에만 들어오면 자기를 때리는 아빠가 아니라, 바닥난 쌀독이 아니라, 내가 불행이라고 했다.
엄마한테 뺨을 맞은 건 9살이었나, 그랬다. 술이 찌든 엄마를 대신해서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깼다. 단칸방 한가운데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난 엄마는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보다가 대뜸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고선 내 뺨을 때렸다. 짜악, 커다란 마찰음에 놀란 건 엄마였다. 금세 빨갛게 부어오르는 어린 얼굴을 보던 엄마는 자기 얼굴을 감싼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있던 유리 조각이 엄마의 다리에 박혀서 피가 줄줄 났다.
「네 탓이야.」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어도. 너 같은 거…….
―데리고 오지 말아야 했어.
나는 꽤 어릴 때부터 내가 엄마의 진짜 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술에 취하면 맨날 그랬다. 너를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어린 눈에도 그게 좀 이상했다. 왜 너를 낳지 않았으면이 아니라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일까. 그러고 보면 엄마랑 아빠가 싸울 때 내 자식도 아니지 않냐는 그런 소리도 들었던 것 같다. 엄마도 그렇게 말했고, 아빠도 그렇게 말했다. 근데 그거 때문에 크게 슬프진 않았다. 당장 먹을 게 없고, 겨울엔 집 안에서 얼 만큼 춥고……나는 그런 게 더 싫었다.
「이치마츠, 미안해.」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사과였다. 아빠는 내가 12살이 지났을 때 결국 새살림 차려서 나갔다. 그리고, 17살이 조금 넘었을 때 엄마는 나를 어디로 데려갔다. 잘 가꾸어진 연못이 있는 정자였는데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자는 고급진 비단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근데 좀 이상했다. 그 여자 옆에서 찻잔에 물을 채우고 있는 건 곱게 차려입은 내 또래의 남자애들이었다. 대문을 들어설 때까지는 여기가 어딘지 몰랐는데, 그 애들을 보니까 알 것 같았다. 늘 방 귀퉁이에서 웅크려 자던 나는 눈치가 빨랐다.
「잘……부탁드릴게요.」
「물론이요.」
엄마는 내 얼굴을 한 번도 안 봤다. 그저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고선 시중들던 소년들이 건넨 주머니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엄마는 날 안 봤지만 나는 끝까지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가 울고 있었다. 단순히 좀 안타까웠다. 또 궁금했다. 엄마 손에 들린 그 주머니가 내가 준 불행을 덜어줬을까.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로 그렇다면 슬플 거 같았다. 사실 엄마를 싫어하지 않았다. 아빠가 나를 때리려고 하면, 엄마는 나를 감싸 안았다. 그래도 나를 아주 미워하진 않았겠지…….
엄마, 그래도 나를 데리고 오던 날은 행복했어?
내가 기억도 못 하는 어릴 적이었을 거다. 엄마는, 그때는 행복했어? 내가 불행이 아니었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눈이 하얗게 식었다. 엄마가 저 멀리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자 그녀가 방긋 웃었다. 그냥 마담이라고 부르라 했다. 고개를 대충 끄덕거리자 하얀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입을 뗐다.
「안 우나요?」
「……그닥.」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내 손을 끌어가선 손목을 어루만졌다.
「여기,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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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손님을 받는 법을 배웠다. 여성용 기모노를 입는 법부터 시작해서 손님을 접대할 때 말투라든가, 분칠하는 방법이라든가……그런 것들. 남색가들을 위한 풍속점이었다. 거기엔 나 같은 애들이 많았다. 다들 구구절절 사연은 많았는데 결론은 다 똑같았다. 팔려온 거지 뭐. 그렇게 4달 정도 교육을 받고 나서야 첫 손님을 받았다. 가게의 단골이라고 했는데, 나처럼 갓 교육이 끝난 소년들의 첫 손님을 자처하길 좋아한다고 했다.
「또 지명해도 될까?」
사내는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러라고 했다. 다섯 번째로 만났을 때 사내는 말했다. 내가 첫 손님 받는 애들을 많이 봤는데 말이야, 으스대는 목소리였다.
「덤덤한 애는 잘 없거든.」
담뱃불을 붙이는 사내를 바라봤다. 뿌옇게 번지는 연기 뒤에 언뜻 보이는 얼굴이 웃고 있었다. 덤덤한 애는 잘 없다, 그 말의 의미는 잘 안다. 첫 손님을 받고 난 후에야 처음 마담을 만났던 날 내 손목을 괴롭히지 말라던 말의 의미 역시 알 수 있었다. 나랑 비슷한 때 들어온 애들 중 첫 손님을 받고 자살시도 하는 애들이 몇몇 있었다.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때문에 잠을 깬 것도 몇 번 됐다. 웃기게도 방마다 붕대랑 약이 넉넉하게 준비돼 있었다. 이전에도 많았던 거다.
……그렇다고 나는 아무렇지 않으냐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몸이 아프기도 아프고, 그냥 이상했다. 처음부터 멀쑥한 삶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나를 저주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래도 내가 나중에 커서 한 사람 몫을 하고 엄마 손에 돈을 쥐여 줄 수 있을 때가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는 온 동네 바느질거리를 다 모아서 집에 쌓았다. 엄지손가락이 닳도록 바느질을 하다가 엄마는 종종 울었다. 엄마는 그냥 단지 더 기다리기 힘들었던 거겠지. 나를 여기에 팔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한계였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덤덤해졌다. 나는 아직 한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가끔 취향이 별난 손님들이 있었다. 가령, 나를 때린다거나.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 나는 유독 그런 사람들의 지명이 많았다. 얼굴에 새파랗게 멍이 올라온 날 마담은 나를 보고 많이 놀랐다. 그런 손님들은 가게 측에서도 어지간해선 안 받는다고 했다. 이상하게 평판이 멀쩡한 손님도 나를 때렸다. 그중에는 자기가 때리고 자기가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첫손님이었던 그 사내가 내게 말했던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뒤로 남자를 받는 건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근데, 맞는 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온몸에 남은 멍의 개수를 세다 보면 나를 맞지 않게 하려고 자그마한 몸으로 내 몸을 덮던 엄마가 생각났다.
……내가 진짜 자식이었으면 여기다 안 팔았을까?
그런 마음이 계속 잦아들어 힘들었다. 자살할 생각은 없었지만 손목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첫손님은 주기적으로 나를 찾았다. 그는 내 손목의 상처를 보고 웃었다. 이제야 힘들어? 그렇게 물으며 사내는 흡족해했다. 대답을 않자 예상했다는 듯 안으로 파고드는 몸이 익숙했다. 남자를 받아들이는 게 편한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대로 긋고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 맨날 박혀 있으니까 그러는 거잖아. 가끔 외출하라고?」
사내는 나를 밖으로 불렀다. 원칙적으로 풍속점 모든 아이들은 손님을 외부에서 만나는 게 금지되어 있다. 근데 이 사내는 대체 어지간한 단골인 건지, 아니면 무슨 힘이 있는 건지 마담도 허락했다. 금요일 3시까지 시계탑. 시계탑이라면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다. 풍속점 바로 근처에 다리가 있는데, 거기를 건너면 소위 잘 사는 놈들의 마을이었다. 옛날에 살았던 우리 집은 다리 정 반대편에 있었다. 덕분에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한 시간은 더 일찍 도착했다. 망했군. 시계탑 그늘 아래에 서서 윤택한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때,
「저기.」
「……?」
너를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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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똑같은 얼굴은 한 그 애는, 이름이 오소마츠라고 했다.
번듯한 도련님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던 오소마츠는 나처럼 어릴 때 다른 집으로 입양 갔다고 했다. 양부모님은 굉장히 좋으신 분이었는데 양자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고 이따금 말해줬더란다. 너를 데려올 때 너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몇 명 더 있었는데, 멀리 가지 않았다면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라기엔 마주 본 얼굴이 똑같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생각했다.
약속 때문에 이제 가야 한다는 내 말에 오소마츠는 나를 계속 만나고 싶다 했다. 내 입장에선 좀 곤란했다. 외출이 자유로운 입장도 아니었고 혹시라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들키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비슷한 하급인생이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오소마츠는 한눈에 봐도 정말 괜찮은 도련님이었다. 끼니 때우는 것도 힘들었던 집에서 결국 남창이 된 나랑은 달랐다. 나는 도저히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지만 그 애는 자기 나름대로는 단호했다.
「계속 만나면 좋겠어.」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내 손목을 잡고 늘어지던 눈에는 나랑 비슷한 게 있었다. 발 없는 짐승 같은……어디에도 발붙이지 못 하는 절박함. 그걸 외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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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극단에서 일하고 있어.」
자기를 학생이라고 소개하는 오소마츠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애는 겉으로는 티를 안 냈지만 내 옷차림을 조금 놀라워했다. 나는 늘 풍속점만 가득한 동네에 살아서 몰랐는데, 보통 다 큰 남자들은 이런 옷을 입고 다니지 않았다. 소매가 길게 늘어지는, 그따위 옷. 내 거짓말에 오소마츠는 웃었다. 그래서 이런 옷을 입고 있었구나. 쉽게 납득한 듯했다. 입맛이 썼다.
그 애는 나에게 자신의 가정교사가 오지 않는 목요일마다 만나자고 했다. 나는 어차피 낮에는 늘 한가했다. 손님을 만나는 건 안 되지만 단순한 외출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 애는 자기가 좋은 곳을 안다며 어떤 연못에 있는 정자로 날 데리고 갔다. 여기서, 매주 만나는 거야.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이 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매주 그곳에서 만났다. 오소마츠는 내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걸 알고 매번 소설이나 시집 따위를 들고 와서 내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종종 쉬운 한자 읽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별다를 거 없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게 의아했다. 모자랄 것 하나 없는 애가 왜 나랑 시답잖은 시간을 보내려는 걸까? 돌려 말할 줄 모르는 내가 대놓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랑 왜 자꾸 만나?」
「그건 왜?」
「……나 너한테 줄 거 아무것도 없어.」
「알아.」
단호한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장난스레 웃던 네가 대뜸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읽고 있던 책으로 입의 윗부분만 덮은 네가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그냥, 외로워서.」
「…….」
「부모님들 정말 다 좋으신 분이고, 나한테 엄청 잘해주셔. 지원도 많이 해주시고. 내 밑으로 여동생이 있는데, 걔는 부모님 친자식이거든. 그렇다고 걔랑 나랑 차별하는 것도 아니야.」
「……근데 외롭다고?」
「세 사람은 나한테 전혀 그렇게 할 생각 없는데, 나 혼자 겉도는 거지. 내가 못난 새끼라서.」
그렇게 말한 네가 잠시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
「어디에 있어도 땅에 발이 닿지 않는 기분 알아?」
안다, 그것도 아주 잘. 저게 배부른 투정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처음 만났던 날, 너에게서 느꼈던 절박함은 어떤 종류의 부유 같은 거였다. 대답을 않고 조용히 소매를 걷어서 하얀 선들이 그어져 있는 손목을 내려다봤다. 이건, 내가 땅에 내리려고 발버둥 치던 뿌리였다. 한참 동안 정적이었다. 결국 다시 입을 뗀 건 너였다.
「그런데, 너를 보면 괜찮아져.」
그러고 보니 너와 만나고 나도 더 이상 손목을 긋지 않았다.
그 날 오소마츠가 얼굴에 덮었던 책엔 쭈글쭈글해진 자국이 있었다. 물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우리는 계속 만났다. 우리는 좀 괜찮았다. 처음 만났던 게 봄이었는데, 어느새 계절을 건너 여름에 다다르고 있었다. 계절이 더워지는 만큼 마음도 녹아내리던 중이었다.
옷차림이 두 겹에서 한 겹으로 되었을 무렵이었다. 너는 평소처럼 정자에 있는 책상 위에 책을 올려두고 조곤조곤 읽었다. 건너편에 앉아 더워진 날씨에 축 늘어져 있던 나를 보며 킥킥거리던 너는 갑자기 책을 탁 놓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건너왔다. 아차, 싶었다.
「……여기 왜 이래?」
「어?」
아.
턱을 괴고 있었던 탓인지 오른쪽 어깨가 반쯤 드러나 있었다. 벌어진 옷 틈 사이로 퍼런 멍들이 보였다. 오소마츠는 이걸 본 모양이었다. 손목을 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때리는 손님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순간 당황해서 옷을 여미려는데 오소마츠가 내 손목을 잡아챘다. 내 어깨를 바라보는 시선이 집요했다.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네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극단에서 연습하다 다친 거야.」
딱딱하게 말하자 네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안타까웠다가, 화가 난 듯 보였다가, 축축해졌다가.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시선을 피하며 옷을 여몄다. 단단하게 묶어진 내 옷 매듭을 한참이나 만지던 오소마츠가 느릿하게 입을 뗐다.
「사실 의사가 되려고 공부 중이야. 아마 몇 년 안으로 끝날 거고.」
「……좋네.」
「그런가.」
네가 조금 웃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너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만약 의사가 되면…….」
「응.」
「……너랑 같이 살까 해.」
아.
「극단 그만둬, 그때는.」
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그냥 등신처럼 울었다. 우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너는 내 손을 쓰다듬으며 평소처럼 책을 읽어줬다. 잔잔한 목소리가 내 온몸에 달라붙었다. 조금씩 녹아내리던 마음이 갑자기 물처럼 흘렀다. 울면서 몇 번이나 헛숨을 들이켰다. 내가 있는 데는 사실 극단이 아니야, 그만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손님들이 몸에 상처를 내면 이 악물고 약을 발랐다. 가게에 있는 약들은 도통 싸구려라 빨리 낫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애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장 좋다는 의원에 가서 약을 샀다. 내 멍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던 얼굴을 생각하면 착잡하다가도 기분이 좀 말랑해졌다.
나름대로 노력한 덕분인지 그 뒤로는 오소마츠에게 멍 자국이나 다른 상처들을 걸리지 않았다. 얼굴을 때리려는 손님들도 있었는데, 그러면 반항했다. 가끔 재수 없으면 거기서 야마 돈 손님들한테 온몸이 부서질 정도로 맞기도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얼굴에 상처가 나면 빼도 박도 못했다.
……얘한텐, 죽어도 들키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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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었다. 여느 때처럼 정자에서 만나서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일어나라며 타박을 주던 너는 이내 포기한 듯 자기도 반쯤 늘어져서 책을 읽었다. 말하기도 더운 건지 점점 목소리가 줄이던 너는 결국 책을 내려두고 책상 위에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봤다. 저번부터 생각했던 건데, 하고 네가 대뜸 운을 띄웠다.
「물색 좋아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네가 손가락을 세워서 내 옷을 가리킨다. 저번에도 이 색 입고 있었던 거 같아서. 듣고 보니 그런가 싶다. 첫손님은 내게 옷 선물하길 좋아했는데, 내가 푸른색이 잘 어울린다며 매일 비슷한 색들로 한가득 사오곤 했다. 그게 다였다. 딱히 좋아한다거나 그런 거는…….
「나도 좋아해. 그리고 너랑 잘 어울려.」
네가 활짝 웃었다. 말문이 막혔다. 고개를 살짝 든 네가 연못을 가리켰다가 다시 나를 봤다. 닮았어. 그렇게 말하는 입모양이 너무 구김살 없었다. 갑자기 손등을 반 가까이 덮는 파란색 소매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너와는 잘 지내다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면 심장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졌다. 이 옷은 내가 몸을 파는 사람이 사다준 옷이야……결국 대답을 못 하고 책상에 고개를 묻어버리자 네가 내 머리를 만졌다.
「예쁘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물살같이 밀려왔다. 소매가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가슴이 뛰었다.
그 다음 날 옷가게에 가서 물색 옷을 몇 벌 샀다. 앞으로 너와 만날 때 입을 옷들이었다. 평소에 입는 치렁치렁한 옷이 아니라, 평범한 남자들이 입을 법한 옷. 가지런히 갠 옷들을 방바닥에 두고 한참 바라봤다. 나는 왜 굳이 이 색을 샀을까……답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예쁘다, 네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마자 옷을 품에 안고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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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놓고도 너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너를 보면 가슴이 뭉칠 때가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먹먹하기도 하고, 아리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고……근데 그건 그냥 피붙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민들레 홑씨 같은 눈이 나랑 비슷해서 애틋한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닌 거 같아서 겁이 났다. 내가 씨발 평범한 형제들이 어떤지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예쁘다는 소리에 가슴 설레진 않겠지.
마담에게 부탁해서 첫손님에게 나한테 와달라는 전보를 넣어 달라고 했다. 그가 사다준 물색 옷을 입고 방에서 기다리는 나를 보며 그는 한없이 가볍게 웃었다.
「잘 어울린다고 그랬지.」
조금 더 닳고 싶었다. 그건 내 위치를 각인시키는 의식 같은 거였다. 속을 아는 건지 뭔지 그는 평소보다 더 거칠게 나를 안았다. 그래서 좋았다. 희미하게 웃는 나를 보며 그는 담배는 꺼내 물었다.
「그렇게 웃지 마.」
「왜요.」
「……전처 생각나니까.」
그 사람, 죽기 전에 매일 그렇게 웃었다고.
담배 필터를 지근지근 씹는 말에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래, 사실 죽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살고 싶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지만. 다시금 가볍게 웃던 그는 바닥에 흩어져 있던 내 옷들을 끌어다가 내 몸 위에 덮었다. 예쁘네. 그가 그렇게 말했다. 갑자기 속이 후련해졌다. 그건 그 애와 같은 말이었지만 아예 다른 감상이었다. 나는, 그 애를, 정말로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씨발. 그가 덮어준 옷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물빛에 잠겨 죽을 것 같았다.
남자한테 안기니까 마음도 여자처럼 되는 걸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오소마츠가 좋았기 때문에 그 애가 손님들처럼 나를 안는 생각을 했다. 그 애라면 나를 때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정상적으로 누구를 좋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그 애를 만나러 가지 못한다.
그럼 그 애는 나를 기다릴까? 매주 만나기로 했던 목요일마다 그 연못 앞에서 나를 기다릴까?……그렇다면 몇 번이나 오지 않는 나를 기다려줄까? 의사가 되면 나와 같이 살고 싶다던 그 애의 말이 끈처럼 내 몸 전체를 감았다. 내가, 남창이 아니었다면. 하다못해 곰팡이 핀 벽에서 엄마랑 둘이 살던 나였다면. 그랬다면…….
그다음 목요일, 너를 만나러 가는 대신 네가 내게 남긴 끈 같은 말들로 목을 맸다.
너를 위해 샀던 옷들을 길게 이어서 천장에 고정한 뒤 목을 맸다. 눈앞이 새하얘져서, 정말로 죽는 건가 싶었는데……결국 살았다. 묶여 있던 매듭 중 하나가 풀린 탓이었다. 쿵,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때문인지 옆방에 있던 아이가 내 방문을 열어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사실 목을 매기 전에 손목을 난도질한 상태였다. 그래도 죽질 않아서 목을 맸다. 빨갛게 된 바닥 위에서 숨을 몰아쉬며 너를 떠올렸다.
너랑 같이 살까 해.
숨이 모자라서 헐떡이며 울었다. 소식을 들은 마담이 내 방으로 뛰어왔다. 착잡한 얼굴을 한 마담에게 한 번 웃어주고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목에 띠 같은 멍이 남아 있었다.
머리맡에 정신이 들면 자기에게 오라는 마담의 쪽지가 있었다. 양 손목에 하얀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세워서 마담의 방으로 가자 수를 놓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맞았다. 앉아요, 차분한 목소리에 그녀의 앞에 앉았다.
「많이 힘든가요?」
그녀는 언제나와 같이 우아한 손짓으로 내 앞에 찻잔을 내밀었다. 찻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꽃잎의 개수를 세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생활이 딱히 힘든 건 아니었다. 시선을 바닥에 처박고 있는 나를 한참이나 말없이 보던 그녀가 한숨을 쉬며 건넨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2년만 더 버텨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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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적어도 나를 데려올 때 엄마에게 치렀던 대가 이상은 갚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가게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다들 그런 식으로 나갔던 걸까? 그런 생각이 얼굴에 티가 났는지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여기서 나가도 대부분은 결국 몸을 계속 팔아요. 돌아오는 사람도 왕왕 있고. 배운 게 그거밖에 없어서. 내가 아직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처럼요. 이제 곧 마흔이 되는 그녀가 소매를 끌어다 자기 손목을 덮었다.
그래도 죽지 말고 버티라고, 그녀가 당부했다.
가게 측에서 한동안 손님 받는 걸 쉬라고 했지만 내가 억지를 부려서 거의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 손님을 받았다. 그냥, 그렇게 하면 하루라도 일찍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손목과 목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며 좋아하는 손님들이 있었다. 자기는 내가 이런 거 좋아할 줄 알고 있었단다. 씨발, 병신들이 알긴 뭘 안다고. 그래서인지 손목의 상처가 아물어 가고 목의 멍은 옅어져도 다른 곳에 계속 상처가 났다. 그 사람들은 내가 맞는 걸 좋아한다고 어지간히도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몸에 난 멍들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났다. 그런데 어느 샌가부터 그 애 얼굴이 떠올랐다. 극단에서 다쳤다는 내 말에 아지랑이처럼 번지던 뿌연 표정들……2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선 계속 병신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너를 만나도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남창이 아니게 되면, 너랑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이곳을 나간다면 나도 정상적으로 너를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안 될 걸 안다. 평생 이런 식으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 전에 형제였다. 같은 남자였다. 어떤 순애보를 들고 와도 정상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씨발, 여기서 나가면 멍을 숨기는 일은 없겠지. 계집애 같은 옷들을 입고 거짓말을 할 일도 없겠지. 만날수록 병신 같은 나에게 네가 질려버려서, 혹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알아버려서, 그래서 네가 나를 내치게 되더라도 그때는 괜찮을 것 같았다.
……사실 이딴 건 핑계고 그냥 너무 보고 싶었다. 너를 너무 만나러 가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핑계가 주어진 거였다.
2년만. 2년만 버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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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다음 목요일에 너를 만나던 곳으로 나갔다. 거의 1달 만이었다. 네가 나와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연못으로 가는 마지막 귀퉁이를 돌 때 눈을 꼭 감았다. 보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을 내딛고서야 다시 눈을 떴다. 늘 같이 앉아 있던 정자에 언제나처럼 네가 있었다. 나에게 읽어주던 책들을 옆에 쌓아둔 채. 인기척을 느낀 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일순 눈을 커다랗게 뜬 너는 벌떡 일어나서 내 쪽으로 걸어온다. 내 앞에 선 네가 내 어깨를 잡았다. 아, 씨발. 거기 멍든 덴데. 간신히 표정 관리를 한 채 네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선수 쳤다.
「미안해, 극단 일이 많이 바빴어.」
「……그래?」
너는 화가 난 것 같다가도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순수하게 내 안녕을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멍이 보일까 봐 팔짱을 끼는 척 옷들을 고정했다. 작게 심호흡을 하고선 어젯밤 수없이 속으로 곱씹었던 말들을 한껏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꺼냈다. 오늘은 이 말을 하러 너에게 왔다.
「극단에서 다른 마을로 공연을 돌 거 같아서 앞으로도 잠시 못 만날 것 같아.」
「얼마나? 오래 걸려?」
「응, 2년 정도.」
네가 표정을 찡그렸다. 내 어깨에 올려져 있던 손가락들이 우물쭈물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너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이네. 걱정했어. 그렇게 말한 오소마츠는 잠시 어색하게 시선을 굴리다가 입을 뗐다.
「……내가 부담스러워서, 안 오는 줄 알았어.」
「어?」
「같이 살고 싶다느니, 예쁘다느니……내가 자꾸 그런 말만 해서 네가 부담스러워서 안 오는 줄 알았다고.」
미안해.
그렇게 사과한 네가 내 어깨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감도 안 잡혔다. 나는 그런 네 말에 가슴이 뛰어서, 너에게 안기고 싶어져서, 못 왔는데. 서로 비슷하면서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꼴이 서글펐다. 그래도 얼굴을 보니까 좋았다. 한동안 보지 못하겠지. 나는 최대한 깔끔한 목소리로 너에게 인사했다.
「돌아와서 다시 보자.」
……그때는, 같이 살 수 있을까?
뒷말은 삼킨 채 너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다. 2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당장 다음 주부터 너를 못 본다고 생각하자 전혀 괜찮지 않았다. 엄마, 조금만 더 기다리지. 내가 빌어먹어서라도 엄마랑 둘이서는 먹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나를 이딴 데 안 팔아도, 둘이서는 어떻게든 살았을 텐데. 엄마만 행복해진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불행해질 줄은 몰랐다. 엉엉 울면서 가게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시종 아이가 많이 놀랐다. 오늘 쉬는 게 어떠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죽은 듯이 여기서 2년만 보내면 너를 볼 수 있단 생각에 아주 조금 괜찮아졌다.
……씨발, 그때 시종 아이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
.
.
“……어떻게 여기 왔어?”
네가, 여기에, 올 줄은, 정말로, 몰랐다.
손님 오셨다며 방문을 열어주던 시종 아이의 얼굴이 유난히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디 아픈 걸까, 싶었는데 아이가 열어준 문으로 방에 들어오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건 나랑 똑같은 얼굴이었다. 아까 나와 만났던, 그때와 똑같은 차림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여기, 왜 있어?”
오소마츠가 내 앞에 앉았다. 분칠한 얼굴부터 시작해서 머리에 꽂혀 있는 장신구, 무늬가 화려한 기모노,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딱 죽고 싶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 몸을 다 훑고 나서 다시 얼굴을 바라보던 네가 먼저 입을 뗐다.
“이상해서 따라와 봤어.”
“…….”
“씨발. 몇 주 안 보이더니 또 멍만 덕지덕지 달고 온 거, 이상하잖아?”
게다가 가는 길 내내 질질 짜는데 안 이상하겠냐고.
오소마츠가 입술을 짓씹었다. 저런 말투로 말하는 건 처음 본다.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잘 쳤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다. 씨발, 멍은 또 어떻게 본 거래. 착잡했다.
“……언제부터야?”
“너랑 만나기 한참 전부터.”
생각보다 목소리가 담담하게 나갔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나도 조금 놀랐다. 하얗게 분칠한 내 얼굴을 한참이나 보던 네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그 멍들은? 목소리 끝이 떨리고 있었다.
“취미가 고약한 사람들이 간혹 있어.”
“…….”
“……그렇게 안 봐도 되는데.”
“이치마츠.”
“원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는데, 너한테 들키고 난 후로는 매번 죽어라 약을 발랐어.”
너한테, 정말 들키기 싫었거든.
쏟아내듯 말했다. 네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내 멍을 처음 봤던 그 날 같았다. 나는 조금 웃었다. 속이 시원했다. 만약 내 거짓말이 들키지 않고, 2년 후에 이곳에서 나가 너와 같이 살게 되었더라도 종종 생각났을 거다. 사실 그때 다리 아래 동네 풍속점에서 남자한테 몸을 팔았어. 두드려 맞기도 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네 얼굴을 못 견뎌서 언젠가 내 스스로 도망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꿈을 꾼 거다. 헛된 꿈. 애초에, 씨발, 그렇게 순탄하게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
“미안해.”
진심이었다. 미안해, 그렇게 말하고 활짝 웃었다. 이것도 아마, 진심. 어쩌다 만난 쌍둥이 형제가 남창이라는 걸 알았다고 해도 얘가 돌아갈 자리는 여전히 반짝이는 곳이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못 만난 셈 치고 살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 정도로 내가 속이 좋진 않았다. 웃는 내 얼굴을 바라보는 네 표정이 기괴했다. 불행한 얼굴이었다. 문득 나 때문이라며 우짖던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태생부터 누군가의 불행이었다. 얼굴도 못 본 낳아준 엄마한테도 그랬겠지. 그러니까, 버려졌겠지. 마음이 조금 쓰렸다. 오늘부로 한동안 못 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영영 못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더 이상 말을 안 했고 오소마츠도 말을 안 했다. 침묵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나는 최대한 네 얼굴을 눈에 담았다. 안녕, 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래야 네가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이 방을 나가서, 영영 나를 보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네가 울기 시작한 건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잘 다려진 양복바지 위에 주먹을 올려둔 채로 너는 울었다. 솔직히 운 것도 아니라 그냥 울음을 참고 있는 거였는데도,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좀 놀랐다. 허구한 날 우는 나랑 달리 얘가 우는 건 그때 딱 한 번밖에 못 봤었다.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서는, 갑자기 2년 동안 못 본다고 하질 않나.”
“…….”
“근데 그것도 다 거짓말이고, 씨발.”
……나는, 정말 너랑 살고 싶었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응, 나도 너랑 살고 싶었어. 너랑 나랑 같이 손잡고, 땅에 발 딛고 살고 싶었어. 내뱉어도 소용없는 말이라 그냥 속으로 삼켰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네가 고개를 들었다. 실핏줄이 다 터진 빨간 눈이 안쓰러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해?”
……글쎄.
나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애초에 그날 너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아니면 그냥 남창이라고 처음부터 말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처음 이곳에 왔던 날 울면서 엄마에게 매달렸어야 했을까……그냥, 얼굴도 모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미안해.”
그냥 사과를 또 한 번 했다. 모든 게 내 탓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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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뭐.... 다른 데 입양 갔다가 만나는 애들 보고 싶어서..... 아 몰라 망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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