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이치] 눈물 꽃 # OSOMATSU 2015. 11. 30. 23:39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사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썼습니다^^;;;;;;

※앞 부분 전개 날려먹음 주의



“일어났어?”

“아……응.”

“너 진짜…….”



쵸로마츠형이 인상을 썼다. 눈을 몇 번 더 깜빡거리자 바로 위쪽으로 수액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병원이구만. 소란스러운 걸 보니 응급실인 것 같았다.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목에서 소리가 막혀서 켁켁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쵸로마츠형이 어디서 난 건지 물을 내밀었다. 고마워. 쇳덩이 같은 소리를 내자 형이 울 거 같은 얼굴을 했다.



“이번이 몇 번째야.”

“몰라.”

“너 진짜 죽고 싶어?”

“응.”

“……하.”



엄마한텐 비밀로 할 테니까. 수액 다 맞으면 집으로 와.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서는 눈가가 울긋불긋했다. 형, 울지 마. 말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웃길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물병을 내려놓던 손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새끼손가락부터 쭉 붕대가 감아져 있었다.



7번째 자살기도였다.





눈물 꽃

written by.르헨





사람을 죽였다.


평소에도 반에서 나를 좆 빠지게 괴롭히던 새끼가 칼을 들고 설치면서 나를 강간하려 했다. 내 목에 칼을 댄 채로 내 옷을 벗기는데, 씨발. 형 생각만 났다. 이 새끼한테 멍이 들도록 맞은 적이 있었다. 멍을 형한테 들켜서 되도 않는 변명을 한 뒤론 죽어라 피해 다닌 게 화근이었나 보다. 같이 가준다는 형의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 편의점에 가는데, 이 새끼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지.


가로등도 드물게 있는 어두운 골목이었다. 애초에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내가 바지를 못 벗기게 계속 반항하자 상대적으로 칼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약해졌다. 안간힘을 써서 칼을 빼앗았다. 갑자기 칼을 빼앗긴 그 새끼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손을 치켜들었다.


손에 쥐고 있던 칼을 그 새끼 목에 꽂은 건 순식간이었다.


칼이 꽂힌 자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눈을 커다랗게 뜨던 그 애는 이내 뒤로 풀썩 쓰러졌다. 쓰러진 사지가 경련했다.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들이 웅덩이를 만들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손과 겉옷이 피범벅이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자리에 한참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날씨가 추운 겨울밤이라 그런지 골목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손에 묻은 피가 빨갛게 굳어가는 걸 보며 형을 떠올렸다. 아까 같이 가준다고 할 때 같이 올걸. 그랬으면 손도 잡고 갔을 텐데.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가 싶다가도 만약 형도 위험해졌을 거라고 생각하자 이게 나은 것 같았다. 내가 죽인 시신을 옆에 두고도 형 생각만 났다. 내가 늦게까지 안 들어가면 걱정할 텐데, 그러면 찾으러 나올 텐데, 어떡하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폰을 만졌다. 형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는데 반대편 골목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치마츠 거기 있어?」

「형…….」

「…….」



형은 예상대로 나를 찾으러 나온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 가로등 밑으로 보이는 형의 장갑 낀 손에는 장갑 하나가 더 들려 있었다. 골목 끝에 선 형은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피로 범벅된 내 얼굴과 내 옆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번갈아가면서 보던 형은 두어 번 뒷걸음질 치더니 다시 되돌아갔다.


도망친 걸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갑자기 서글펐다. 형, 형. 아까까지만 해도 나란히 앉아서 기대 있었는데 갑자기 저만치 멀어진 기분이었다. 나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그냥 이대로 있다가 다른 누가 발견해줘서 잡혀가면 편할 것 같았다. 집에서 그러던 것처럼, 무릎을 세워서 끌어안았다. 양말도 없이 슬리퍼만 신은 발이 시렸다.



「이치마츠.」



얼마나 지났을까, 나직이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형이었다. 아까 도망간 거 아니었어?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 안 나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가만히 보던 형은 내 팔을 잡아서 일으켜 세웠다. 형은 내 손에 들린 칼을 빤히 보다가 갑자기 내 손에서 빼내더니 자기 손에 쥐었다. 비어버린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런 내 손을 겹쳐서 잡은 형은 잠시 동안 손등을 어루만지다가 내 손바닥을 폈다.



「조금 아플 거야.」

「……?」



형의 말에 의아해 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손바닥을 파고 들었다. 악! 소리를 지르며 손을 뒤로 확 빼내자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손바닥 한 가운데가 깊게 패인 채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그런 표정을 하고 바라보자 형은 얼굴을 찌푸렸다. 많이 아프지. 안타까운 표정을 한 형은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갑자기 내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기더니 자기 겉옷과 바꿨다.



「나 말리느라고 고생했어.」

「……뭐라고?」



멀리서 희미하게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병원 빨리 가면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야.」



형은 내 겉옷에 묻어 있던 핏방울을 손가락에 묻히더니 자기 얼굴에다 슥 그었다. 골목 끝에 차가 급하게 서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었다. 경찰들은 순식간에 형과 그 새끼 시체를 둘러쌌다. 씨발. 거기 아니야, 병신들아.



「미안해.」



형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저 사람부터 병원에 보내주세요, 형이 자기한테 수갑을 채우던 사람에게 말하자 경찰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여전히 내 손에선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 그 중에서도 높은 축인 듯한 사람이 내게 턱짓하자 경찰 몇 명이 내게 붙어서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거 놔봐.」

「일단 병원부터 가셔야죠.」

「놓으라고!」



양팔을 경찰들한테 잡힌 채 버둥거렸지만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라서 효과가 없었다. 아니, 씨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데. 머리가 하얗게 돼서 그냥 형을 바라봤다. 수갑을 찬 채로 경찰들을 따라가던 형은 차에 타다 말고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봤다.



「내가 한 거야.」



형이 그렇게 말했다. 형은 아까 나를 보고 도망친 게 아니라 씨발, 경찰에 신고를 한 거였다.

.

.

.

형은 진심으로 자기가 다 뒤집어 쓸 작정이었다.



그날 병원에 실려가던 도중 기절했다. 피를 많이 흘려서 쇼크가 왔다 했나, 그랬다. 씨발. 어쨌든 살았다. 한동안 왼손을 못 쓰게 됐지만 그딴 손 썩어서 평생 못 써도 상관없었다. 상처가 많이 깊어서 꿰매는 수술을 했다고 했다. 깨자마자 보인 건 카라마츠형이었다. 오소마츠형은? 눈뜨자마자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내서 묻자 카라마츠형이 인상을 썼다.



「그 새끼는 왜.」



뭐?


이상하다. 그 새끼? 카라마츠형이 형을 그런 식으로 입에 담은 건 처음이었다. 내가 얼이 빠진 얼굴을 하자 카라마츠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형은, 구치소에 있어. 씨발, 이게 더 이상하다. 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카라마츠형이 놀라서 내 어깨를 눌렀다.



「어디 가게.」

「형한테.」

「미쳤어?」

「왜?」

「왜냐니……형은 너한테까지―」



뒷말은 듣지도 않고 카라마츠형을 힘껏 밀어냈다. 그런데 형에게 베인 왼손은 아예 쓰질 못해서인지 금방 다시 침대에 눕혀졌다. 오른손에 꼽혀 있던 주사바늘이 뽑혀서 피가 줄줄 났다. 카라마츠형이 당황해서 간호사를 불러오겠다며 병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형이 나가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쌩깠다. 병실에 있던 아무 슬리퍼나 대충 주워서 신고 복도로 나오자 어질어질했다.


「내가 한 거야.」


진짜 미친 거다. 무작정 병동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깥바람이 쌀쌀했다. 안쪽 병동이었던 건지 병원 입구까지 멀었다. 그냥 계속 뛰었다. 병원 앞 횡단보도까지 뛰어왔는데 막상 건너려고 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집에는 당연히 없을 거고, 어느 경찰서에 있는지는 모른다. 그렇게 신호등이 4번은 더 바뀔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눈가를 문지르던 환자복 소매가 금세 축축해졌다. 나중에 가서는 아예 주저앉아서 울었다.


영영 형을 못 볼 거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뒤늦게 따라서 나온 카라마츠형한테 잡혀서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진정제를 맞았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와중에도 카라마츠형의 옷을 잡고 사정했다. 오소마츠형이 있는 데로 데려달라고. 내가 다 한 거니까 형은 잘못 없는 거라고.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는 나를 보며 카라마츠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카라마츠형에게 보채서 형이 있는 경찰서로 갔다. 근데, 면회를 거절당했다. 형 쪽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했다. 피가 싹 식었다.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밀려왔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면서 소리쳤다. 그거 사실 제가 한 거예요, 씨발, 그 사람 잘못 없으니까 풀어주세요. 카라마츠형이 옆에서 붙잡고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경찰서 바닥에 앉아서 한참을 우는 나를 보던 담당형사는 갑자기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카라마츠형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못 박은 후에 따라간 곳은 안쪽 조사실이었다. 



「자꾸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

「저희 쪽에선 이미 조사가 끝났습니다. 증거 확보도 됐고, 피의자도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가 서랍 같은 데서 녹음기와 테이프 두세 개를 꺼냈다. 테이프 하나를 녹음기에 끼운 남자는 별 설명도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녹취록은 수화기가 달칵거리는 소리로 시작됐다. 숨을 크게 들이쉬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 여기가……XX거리에서 3번째 골목쯤 되는 곳인데 제가 방금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형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빨리 출동해달라는 말과 함께 첫번째 녹취록은 끝났다. 멍하게 있는 나를 딱하게 보던 남자는 테이프를 갈아 끼우고 다시 재생버튼을 눌렀다.



「같은 학교 학생인데, 평소 저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어제는 길에서 마주쳤는데 갑자기 흉기를 꺼내 저를 위협하기에 몸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던 과정에서 칼을 뺏은 뒤 저도 모르게 그 애를 찔렀습니다. 동생은…… 저를 말렸는데 제가 실수로 칼을 휘둘러서 상처를 냈습니다.」



물 흐르듯 말하던 형은 거기서 잠시 멈췄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숨을 꾹 참았다. 형은 다 알고 있었던 거다. 나랑 그 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겨도 형은 알고 있었다. 그게 너무 서러웠다. 내가 숨기니까 형도 숨겨준 거다. 어설프게 멍을 감추는 나를 보면서 형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뚝뚝 떨구는 나에게 형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재판만 남은 상태입니다.」



대꾸도 못 하고 계속 울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는 나를 이제는 딱하게 보던 형사가 자기 딴에는 위로랍시고 말을 건넸다.



「그래도 자진신고 했으니까 선처를 바라는 수밖에 없죠.」



특이할 것 없는 보복성 우발적 살인, 거기다가 범인은 자백. 군더더기 없는 정황 속에서 공권력은 깔끔한 판결을 내렸다.


징역 15년.


1854번, 그 사람들은 형을 그렇게 불렀다. 씨발, 그건 원래 내 이름이었다.


형은 구치소에 있던 때부터 입소할 때까지 가족들을 일체 만나지 않았다. 부모님이랑 쵸로마츠형은 재판 때 갔었는데 엄마가 실신해서 중간에 나왔다. 그렇게 형은 사라졌다. 얼굴 한 번 안 보여주고. 남겨진 사람은 어떨지 생각도 안 하고.

.

.

.

그때부터 습관적으로 자해를 했다.


처음에는 자살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좀 힘들었다. 형이 내 손바닥을 그을 때 지었던 표정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형은 한 번도 내 앞에서 그런 불행한 얼굴은 안 했다. 형은 나를 많이 사랑한다. 어느 정도인지 감히 짐작은 못 해도 그건 안다. 그런 형이 나한테 꿰매야 할 만큼 깊은 흉을 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파랗게 음영진 형의 눈동자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끝없는 자책은 결국 내 몸에 상처를 내고서야 끝났다. 사실 끝나긴 커녕 계속 이어졌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죄를 스스로 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가 처음 손목을 그어서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엄마는 또 실신했다. 응급실에 누운 채 손목에서 불에 덴 듯한 통증을 느끼며 웃었다. 이렇게 해선 안 죽는구나. 좀 웃겼다. 쓰러진 엄마를 대신해서 내 보호자를 맡은 쵸로마츠형은 보조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아?」

「아니.」

「그래…….」



쵸로마츠형이 말끝을 계속 흘렸다. 그러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쵸로마츠형은 슬그머니 보조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네가 제일 힘든 건 아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몇 번이나 입술을 씹던 쵸로마츠형은 결국 그냥 자리를 떴다. 나머지 형제들도 형이랑 내가 좀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진 못 할 거다. 사실 원래도 행복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형을 못내 사랑하면서도, 우리가 그럴싸한 결말을 맺진 못 할 거라고 늘 생각했다. 축복은커녕 돌만 던지지 말라고 사람들 바짓가랑이를 잡아야 하는 사이였다.


……그랬는데, 씨발.


그래도 형이랑 내가 평범하게 계속 사랑했다면 언젠가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빌어먹을 형제였지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실낱같은 미련들이 마음을 옭아맸다. 아직도 선연한 것들이 있다. 나를 바라보던 시선 한 줌, 나를 만지던 손바닥의 온도, 사랑한다고 속닥이던 목소리……아마, 행복했을 거다.


나는 등신 같이 부끄러운 게 뭐가 대수라고 형한테 한 번도 사랑한다고 안 했었다.


그래도 형은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형이 사랑한다고 할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말로 얼버무렸다. 그러면 형은 나를 꼭 껴안으면서 내 어깨에 턱을 올린 채로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건 누구한테 하는 말이었을까. 만약 그게 형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면, 그랬던 거라면……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형이 남긴 흉터가 아프다.


우리는 어떻게든 피로 이어져 있으니까 나도 언젠가는 형처럼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형이 지을 표정을 상상하면 가슴에 꽃잎을 띄운 물을 채워 넣는 기분이었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범람하기 직전이 되면 사랑한다고 할 생각이었다.


근데, 씨발, 이제 아무것도 못 한다.


물이 차고 넘쳐서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을 때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죽길 바라며 손목을 그었다. 몇 번을 찢겨지고 아물면서 왼쪽 손목만 하얘졌다. 그게 전부 흉터였다.



원래는 형의 면회를 1주일에 한 번 꼴로 간다. 그러다가 손목을 그어서 손에 붕대를 감으면 한동안 쉬었다. 형이 어차피 만나주지 않을 거라서 내 모습이 어떻든 전혀 상관없는 것도 아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형은 내가 면회 가는 주기가 들쭉날쭉한 이유를 몰라야 했다.


이번엔 2주 이상 붕대를 감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를 늘 담당하는 의사도 이제 거의 포기한 것 같았다. 이미 손목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죽지만 않으면 됐다, 의사는 그런 식의 표정이었다. 무거운 거 들지 말고, 폰 같은 거 무리해서 사용하지 말고……몇 번이고 들은 주의사항이었다. 원래는 쵸로마츠형의 성화 때문에 붕대 같은 건 의사가 말하는 대로 감고 있는 편이었다. 근데, 이제 필요 없다.


형이 입소한 지 거의 딱 1년이었다.


1주일도 안 돼서 혼자서 멋대로 붕대를 풀었다. 벌어진 틈이 아직 덜 붙은 상태였다. 그 위에다가 손목시계를 덧대어서 찼다. 시곗줄 옆으로 흉터들이 삐져나왔지만 그 정도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제 교도관들도 대충 내 얼굴을 알았다. 재소자 얼굴이랑 똑같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가면 안쓰러운 눈부터 했다. 1년을 꼬박꼬박 찾아왔는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으니 그럴 거다. 1854번 면회 왔습니다. 신분증을 건네주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아마 조금 지나서 아까 그 교도관이 와서 고개를 저을 거다. 그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할 말이 있어서 왔다. 예상대로 철문 건너편에서 나온 교도관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거리고선 교도관을 다시 불렀다.



“형……아니, 1854번한테 전해주세요.”

“예?”

“다음에도 면회 안 받아주면…….”



죽어버릴 거라고.


교도관이 일순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했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럼 이만 돌아가셔야 한다며 교도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면회 대기실 벽을 눈에 꼭꼭 담으며 밖으로 걸어갔다. 저 벽 너머에는 형이 있겠지. 형도 나랑 똑같이 박동하고 있겠지.



“감사합니다.”



입구까지 데려다준 교도관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날씨가 흐리더니 기어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눈발 사이로 섞였다. 습관적으로 왼쪽 손목을 만졌다. 3번째였나, 4번째였나 면도칼로 손목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난도질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힘줄이 끊어졌다. 다시 붙긴 했지만 때때로 통증이 찾아든다. 재활치료도 제대로 안 해서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녹슨 중첩처럼 움직이는 왼손을 바라보다가 뒤돌아서 닫혀진 문을 바라봤다.



“형.”



입김 같은 목소리가 하얗게 부서진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건 오래된 일이다.



“다음에는 만나줘.”



그때는 꼭



“사랑한다고 말할게.”

.

.

.

그 날 마지막으로 8번째 자살기도를 할 거다.



----

그냥... 이치 대신 뒤집어쓰는 오소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쓴 거라 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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