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이치] 실외투증후군 # OSOMATSU 2015. 11. 22. 22:29




실외투증후군

written by.르헨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치마츠를 좋아했다.


이치마츠는 어릴 때 흔히 말하는 착한 애였다. 부모님 말도 잘 듣고, 시키는 일도 열심히 하고……그런 착한 애. 이치마츠는 우리 중에서도 심부름을 제일 많이 했다. 이치마츠가 심부름하고 남은 잔돈과 물건을 주면 엄마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럴 때마다 이치마츠는 덧없이 웃었다.


가끔 엄마가 머리 쓰다듬어주는 걸 잊어버린다거나 곧바로 다른 형제에게 가버리면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서서 빈손을 내려다봤다. 그러다가 화장실로 가서 혼자 우는 거다. 다리를 질질 끌 듯이 가는 게 이상해서 몰래 따라갔다가 알았다. 문에 귀를 갖다 대야 들릴 정도로 미약하게 흐느끼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뭐라 표현을 못 하겠다. 미안함? 죄책감? 나는 빌어먹을 장남이라 심부름 따위 안 해도 늘 엄마의 관심 안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과일 찍힌 포크를 받아들 때, 이치마츠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애정이 부족해서 허덕이고 있었다.


애새끼 주제에 이상한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나는 이치마츠가 조용히 화장실로 가면 그 뒤를 따라가서 얘가 다 울 때까지 문 앞에서 지켰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가만히 그 앞에 서서 지키다가 안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화장실 옆에 있는 2층으로 가는 계단에 숨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고개만 살짝 내밀어서 다시 거실로 돌아가는 이치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내가 네 몫의 애정까지 좀먹고 있는 거라면 내가 대신 채워주면 되는 거 아닐까?


그 뒷모습을 사랑했다. 새파랗게 말라 있는 등, 화장실에서 나온 직후엔 어김없이 색이 진해져 있는 소매……꼭 심해 같은 모습이 내 마음을 담금질했다. 나는 쓰레기처럼 이치마츠가 더 울길 바랐다. 이치마츠가 애정에 더 목마를수록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럴수록 내 사랑에 매달릴 거라고. 한심할 정도로 애 같은 발상이었다. 그때가 중학교 1학년일 때니 실제로 어리기도 했다.


씨발. 정작 이치마츠는 나를 얼마나 좆같아 하는지도 모르고.


꽤 완벽하게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치마츠 성격에 죽어도 우는 걸 들키긴 싫어할 것 같았다. 이치마츠가 우는 그 문 앞에 서 있는 게 좋았다. 그건 이치마츠와 나만의 시간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애의 심해였다. 소금물로 이루어진 그곳을 부유했다. 물속의 이치마츠는 울고 있었지만 그 밖에서 나는 혼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얘랑은 그때부터 이미 엇나간 거다.



「형 여기서 뭐 해?」



그 날은 이치마츠가 걸어 나오는 소리가 안 들렸다. 평소처럼 문 앞에 서 있던 나를 이치마츠가 닳은 모서리처럼 바라봤다. 변명거리를 찾으려 눈을 굴리다가 너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입을 다물었다. 이치마츠는 일부러 발소리를 안 낸 거다. 나를 바라보는 눈은 의문보다는 경멸에 가득 차 있었다.



「……아, 그냥.」

「그렇구나.」



등신처럼 둘러대는 나를 보며 이치마츠는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형, 되게 재수 없는 거 알아?」



그렇게 말하고선 나를 스쳐가는 이치마츠를 잡고 뭐라도 변명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치마츠는 그 뒤로 화장실에서 혼자 울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치마츠를 계속 좋아했다. 이치마츠는 늘 결여된 상태였다. 더 이상 엄마에게 애정을 찾지도 않았고, 형제들 손을 타지도 않았다. 그냥 늘 그렇게 어딘가 비어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속이 탔다. 이치마츠는 다른 사람들에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만 내게 벽을 쳤다. 둘만 남을 만한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자리를 뜨거나 쥬시마츠를 데려온다거나 했다. 이치마츠는 나를 존나게 싫어했다. 그런 냉전 상태가 몇 년은 이어졌지만, 그래도 씨발 그 전에 잘 지냈던 시간이 더 길었고 앞으로 잘 지내볼 시간이 더 많으니까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

.

.

소문을 듣게 된 건 바로 몇 달 전이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존나 좆같은 일인데, 점심 먹고 혼자서 운동장을 걷는데 바로 앞에 가던 여자애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2반의 이치마츠군 말이야.」



그 반 담임 선생님이랑 잤다며?


뒷말은 거의 속삭이다시피 했지만 똑똑하게 들렸다.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누가 누구랑 뭘 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귀에 박힌 그 이름은 이치마츠가 맞았다. 이미 저만큼 멀어진 여자애들을 따라가서 붙잡았다.



 「방금 한 얘기 다시 들려줘.」



그 애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자기들이 떠들고 있던 소문의 주인공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물으니 당연했다. 그 애들은 말하기를 꺼려했다. 몇 번이나 말을 흘리는 게 답답해서 조금 큰 소리로 다그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게…….」



이치마츠는 자기네 반 담임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소문이 퍼진 상태라고 했다. 나는 그딴 소문 들은 적 없는데? 걔네들 말로는 자기들도 어제인가 들었다고 했다. 어떤 애가 이치마츠와 담임이 모텔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하는데. 아니 씨발 우리 여섯 명이 다 똑같이 생겼는데 무슨 수로 그게 이치마츠인 줄 알아? 내가 따지듯 묻자 그 애는 그건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우리 중 누가 진짜든 좆망한 건데 나는 그냥 이치마츠만은 아니길 빌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애들에게 가보라고 손을 저었다.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멍하게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잡고 근처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폰을 문지르다가 결국 전화를 걸었다. 이치마츠, 나야. 잠시 운동장으로 나와. 한참 대답이 없던 이치마츠는 알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치마츠를 기다리는 동안 2반 담임을 떠올렸다. 수학 선생인가 그랬는데, 아마……유부남이었다. 그럼 당연히 아니겠지. 다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달달 떨고 있는데 저 멀리서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 쓴 이치마츠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쟤가 그 선생이랑? 아닐 거다. 전혀 상상 안 간다.



「왜 불렀어?」

「…….」



막상 얼굴을 보니 말이 안 나왔다. 너 니네 담임이랑 잤어? 이 말을 어떻게 물어, 씹.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나를 빤히 보던 이치마츠가 조용히 내 옆에 앉는다. 옆에 앉은 이치마츠를 그저 힐긋거리기만 하는데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튼 이치마츠가 교복 위에 입고 있던 후드티의 목 부분을 끌어내린다.



「이게 궁금한 거지?」

「이치마츠!」



이치마츠가 끌어내린 옷 사이로 보인 건 적나라한 키스마크였다. 깜짝 놀라서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서 다시 옷을 원래대로 돌려놓자 이치마츠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다 아는 것 같던데.」



그러고 보니 이치마츠가 내 옆에 앉던 순간부터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힐끔힐끔 닿는 게 느껴졌다. 이치마츠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너 뭐야?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입이 안 떨어졌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이치마츠는 한숨을 쉬더니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갈게, 하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할 말은 존나 많은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서 뭐라 말이 안 나왔다. 이치마츠가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걸 보고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당장에라도 이치마츠를 쫓아가서 얼굴을 보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 꾸역꾸역 참았다. 수업이 다 끝나자마자 2반으로 갔다. 가방을 다 챙긴 듯한 이치마츠를 무턱대고 끌고나왔다. 집으로 가면 다른 형제나 부모님이 있을 게 뻔해서 집 대신 예체능교실만 몇 개 있는 구관 건물로 향했다. 이치마츠는 나무인형처럼 끌려왔다.


나랑 이치마츠는 빈 교실에서 책상에 앉은 채로 마주봤다. 햇빛이 닿지 않는 건물이라 그런지 이치마츠가 몸을 떨었다. 쟤는 존나 평화로운데 나만 안절부절 못 했다.



「너 왜 그래?」



말이 병신같이 나갔다. 앞뒤 다 잘라먹고 묻자 이치마츠가 이제 막 잠에서 깬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순간 신경질적으로 눈을 찢던 이치마츠가 입을 뗐다.



「그러는 형은 전부터 나한테 왜 그래?」

.

.

.

그러게.


이치마츠가 하는 말의 뜻을 안다.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은 곧이곧대로 다 받는 새끼가 자기 위한답시고 문 앞에 서 있는 게 얼마나 좆같았을지, 그게 잘하는 짓이라고 믿는 내 표정이 얼마나 역겨웠을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씨발. 그것도 사랑이었다.


복잡한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이치마츠가 인상을 찌푸렸다.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책상에서 내려온 이치마츠가 타박타박 걸어서 내 앞에 섰다. 한숨을 한 번 내쉰 이치마츠는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형도 그냥 나랑 자고 싶은 거지?」

「……무슨 소리야?」



이치마츠가 웃었다. 그게 다 안다는 식의 표정이라 어이가 없었다. 내가 표정을 구길수록 눈을 가늘게 뜨던 이치마츠가 어깨를 으쓱였다.

 


「형도 그런 거잖아.」



고개를 살짝 숙인 이치마츠가 내 교복 바지 버클을 풀었다. 형도 그냥 그런 거잖아, 다시금 중얼거리는 말은 악에 받쳐 있었다.




이치마츠랑 잤다. 그 뒤로도 꾸준히. 내가 먼저 하자고도 안 하고 이치마츠도 나를 먼저 끌어들이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됐다. 그게 이치마츠가 나한테 쌓는 벽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나랑 섹스 이상의 관계를 만들기 싫어서 선수 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끊어내진 못했다. 몇 달은 문 앞에서만 서성였고, 몇 년은 그냥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니까, 씨발. 나는 그거라도 하고 싶었다.


이치마츠는 나랑도 자고 그 담임이랑도 계속 만났다. 가끔 이치마츠의 몸에서 그 선생이랑 잔 흔적이 보이면 눈이 돌아가서 나도 모르게 오기를 부렸다. 잇자국이 파랗게 남을 때까지 깨문다거나 하는……그러면 이치마츠는 끙끙 앓긴 했는데 말리진 않았다. 그게 무서웠다. 그 새끼도 나처럼 눈 돌아가서 얘 패면 어떡하지? 얘는 누가 자기를 패든 안 말릴 거 같았다. 이치마츠는 사람 정신을 돌게 만들었다.




2반 반장이 찾아온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2반 반장이 널 찾는다고 해서 뒷문으로 갔더니 그 애가 곤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치마츠가 사라졌다고 했다. 분명 아침에는 있었고 1교시까지도 있었는데 2교시 때부터 안 보이더니 3교시까지도 안 들어왔다고. 가방도 그대로 있고 책상 서랍에 폰도 그대로 있는 게 좀 이상해서 쌍둥이 중 첫째인 나한테 물어보러 왔다고 했다. 씨발, 나는 당연히 모른다. 내가 고개를 젓자 당황한 표정을 짓던 반장은 알겠다며 돌아가려고 했다. 근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그 애를 붙잡았다.



「너네 담임 지금 수업 있어?」



아마 없을걸, 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불현 듯 며칠 전에 이치마츠가 얼굴에 밴드를 달고 들어온 날이 생각났다. 그 날 이치마츠랑 잤는데, 씨발. 등에 멍 같은 게 있었다. 물론 다른 이유로 멍이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직감이었다. 그 선생 새끼가 팬 거라고. 멍이 들어있는 곳 바로 근처에 하나씩 잇자국을 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치마츠라면 충분히 그냥 맞아줬을 거다. 얘는 그러고도 남을 병신이다.


둘이 섹스를 하는 건 상관없었다. 아니 존나 솔직히 말해서 상관없지는 않은데, 사실은 그거 때문에 환장할 거 같은데,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이치마츠가 결핍하도록 만든 사람 중 하나였다. 거기다 대고 상처를 준 것도 사실이고. 이치마츠는 아직도 나를 싫어한다. 말 안 해도 그 정도는 안다. 이치마츠는 나랑 섹스는 해도 나에게서 애정을 찾진 않는다. 씨발, 그렇다는데 내가 지한테 뭐라고 해.


……씹, 그래도.


4교시 시작하는 종이 쳤지만 그냥 쌩까고 학교를 뛰어다녔다. 나는 이치마츠가 귀를 만져주면 자지러지는 건 아는데, 학교에서 어느 곳을 좋아하는지는 모른다. 우린 그런 사이였다. 덕분에 나는 어디를 콕 집어서 찾아가지도 못하고 그냥 하릴없이 뛰었던 데만 계속 뛰었다. 어쩌면 둘이 그냥 존나 행복하게 섹스를 했을 수도 있고, 이치마츠가 단순히 땡땡이를 친 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이 안 됐다. 이치마츠가 마스크로 덮고 다니던 밴드가 계속 눈에 밟혔다. 교정, 예체능실, 교구실, 학교 뒤편에 주차장……갈 만한 데는 다 갔는데도 이치마츠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교복 셔츠가 축축해졌다. 운동장 구석에 있는 급수대에서 대충 물을 마시고 다시 발걸음을 떼려고 할 때였다.



「아.」



찾았다.


급수대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구석진 벽 쪽에 체육공구실이 있는데, 그 앞에 누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랑 똑같이 생긴 정수리만 봐도 누군지 뻔했다. 존나 구석진 데도 있네. 마음이 안 가라앉아서 타박타박 소리를 내며 걸었나 보다. 아직 가까워지지도 않았는데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봤다.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얘는 내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형.」

「이치마츠.」

「아프다.」



그렇게 말한 이치마츠가 자기 얼굴을 더듬으면서 픽 웃었다. 속에서 열이 끓었다. 간신히 화를 눌러 담고선 이치마츠 앞에 눈높이를 맞춰서 앉았다. 이치마츠가 눈을 내리깔았다. 어깨를 잡고 찬찬히 훑어보는데 얼굴만 줘터진 게 아니다.



「왜 맞았어.」

「그냥.」

「그냥?」



어이가 없어서 웃자 이치마츠도 따라서 웃는다. 순간 주먹이 나갈 뻔했다. 이치마츠가 주먹을 꽉 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쳤다.


……아. 씨발.



「형도 나 때리고 싶어?」

「아니.」

「웃기네…….」



이치마츠가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즐거워 보였다. 진짜 미쳤다. 얘 진짜 미친 거다.



「……양호실 가자.」

「그러지 뭐.」



내가 일으켜 세우자 이치마츠가 휘청거렸다. 엿 같다. 팔을 쭉 땡겨서 업으려고 하니까 그건 또 고분고분 있는다. 나랑 덩치가 비슷한 애를 업고 양호실에 들어가니까 양호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안쪽에 침대 좀 쓸게요, 그렇게 말하자 양호쌤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다른 침대에도 사람이 없었다. 이치마츠를 제일 안쪽 침대에 앉혀 놓고 다시 밖으로 나와서 쌤한테 연고랑 반창고 소독약 뭐 그딴 걸 받았다. 손에 뭘 한가득 들고 있는 나를 이치마츠가 말갛게 바라봤다.



「엄마한텐 뭐라고 할 거야?」

「그건 형이 생각해줄 거 아니야?」



자기는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데 순간 울컥했다. 입술에 약을 발라주던 손에 힘이 들어간 건지 이치마츠가 인상을 찌푸렸다. 형, 또 터졌잖아. 담담하게 말하는데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따가운 목구멍을 꾹꾹 삼키며 얼굴에 난 상처에 하나씩 연고를 발랐다. 눈을 감고 가만히 손길을 받고 있던 이치마츠는 내가 자기 어깨에 밴드를 발라주려고 고개를 숙이자 갑자기 내 얼굴을 더듬었다.



「형 울어?」

「아니.」

「형.」

「…….」



뺨에 닿는 손이 집요하다.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던 이치마츠는 한숨을 내쉬며 내 눈 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밴드 껍질을 까던 손을 멈췄다.



「형이 나 때문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로, 정말로, 그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이치마츠는 말을 이었다.



「내가 형한테 그 정도의 의미가 되는 건 싫어.」



이치마츠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안다. 그게 지랑 떡치고 싶어서 발정 난 게 아니라 진짜 좋아한다는 것도 안다. 근데도 일부러 이러는 거다. 얘는 내가 자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못 견뎌 한다. 여전히 말을 않자 내 눈 위에서 손을 거둔 이치마츠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목에 얼굴을 갖다 대고 몇 번 부비적거리다가 떨어진 이치마츠가 다시 입을 뗐다.



「이제 형이랑만 잘 테니까.」



……넌 진짜 씨발년이야.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목 끝에서 간신히 눌렀다. 저딴 걸 위로랍시고 늘어놓고 있다. 눈에 열이 올라서 터질 것 같았다. 빨갛게 충혈됐을 눈으로 이치마츠를 착잡하게 바라봤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데 이치마츠는 까맣게 식은 눈이다.


그러니까 나랑 사랑 같은 거 하려고 하지 마.


이치마츠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뒤에 생략된 말이 짐작 갔다. 여전히 내 목에 매달려 있던 이치마츠를 떨어트려 놓고 아까 까다 만 밴드를 다시 집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곳부터 밴드를 붙여주며 이를 악물었다.



「가족들한텐 운동장에서 넘어진 거라고 하자.」



이치마츠는 내 말에 조금 웃었다. 응, 나도 정리할게. 먼지 같은 목소리가 흩어졌다.



「사실 이거 형 때문이야.」



희미하게 중얼거리는 이치마츠의 말에 대답을 못 하고 반창고를 뜯었다. 사실 나도 안다. 내가 멍 자국을 보고 야마가 돈 것처럼, 그 선생도 내가 남긴 잇자국을 보고 야마 돈 거다.……그러라고 남긴 거였다.


나는 진짜 존나 못된 새끼였다.




이치마츠는 나름대로 약속을 지키는 건지 뭔지 그 뒤로 잠잠했다. 담임새끼랑도 진짜 정리한 모양이었다. 그럼 학교생활은 괜찮은 거야? 섹스하고 같이 누워서 숨을 돌리다가 물은 적이 있는데 이치마츠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끼가 자기랑 그렇게 되긴 했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서 서로 일대일로 얼굴 볼 일만 없으면 괜찮다고 했다. 씨발, 그게 뭐야. 존나 병신 같잖아.

.

.

근데 제일 병신 같은 건 나였다. 최근 들어서 거의 처음으로 이치마츠에 대한 소문이 조용했다. 그 일 후로 이치마츠랑 나랑 섹스하는 게 잦아졌는데 내가 남긴 것 외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나는 등신같이 그게 너무 좋았다. 나도 더 이상 이치마츠에게 잇자국을 내지 않았다. 얘랑 나랑 괜찮아져가는 중이라고,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졌지만 그건 이제부터 풀어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형.”



토도마츠였다. 난 1반이고 얘는 9반이라 학교에서 나한테 오는 일은 잘 없는데 웬일로 왔길래 좀 놀랐다. 반가워서 손을 들어서 인사하는데 애 표정이 별로 안 좋다. 여기 말고 잠시 나가서 얘기하자는 토도마츠의 말에 괜히 불안해져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따라갔다. 손바닥이 금세 축축해졌다.



“이치마츠형 괜찮아?”



응, 아니.


토도마츠는 내가 이치마츠랑 자는 걸 안다. 아마 형제 중에선 얘만 알 거다. 대놓고 들킨 적은 없는데 애새끼가 얼마나 기민한지.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한숨을 쉰 토도마츠가 입을 열었다.



“우리 반에 불량한 새끼들이 있는데, 걔네가 이치마츠형 건드린 거 같더라.”

“뭐?”

“알잖아, 이치마츠형 소문 어떤지.”



토도마츠는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걔네들 무리끼리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냥 이유도 없이 팼다고 했다. 나는 더러워서 섹스는 못 하겠던데 이 새끼는 좋다고 달려 들었다면서. 한 명이 아니라 두세 명이서 그런 얘기를 했더란다.


피가 하얗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게 언젠데? 덜덜 떨면서 묻자 토도마츠가 나직이 아까 2교시 끝나고, 하더니 뒤에 말을 덧붙였다. 오다가 확인했는데 이치마츠형은 자기 교실에 있어. 그게 오늘은 아니었나 봐. 토도마츠가 착잡하게 웃는데 나는 장난이라도 웃을 마음이 안 들었다. 어제 이치마츠는 뭐 했더라. 어, 씨발. 나랑 얼굴도 안 보고 일찍 잤나 그랬다.



“오소마츠형.”

“어.”

“……아니야. 됐어. 이따 집에서 보자.”



토도마츠는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그것까지 신경 써줄 여력이 없었다. 반으로 돌아가다 말고 2반에 들러서 이치마츠 얼굴을 당장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다음엔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기억 안 난다. 그냥 얼른 학교 끝나고 이치마츠를 봐야 할 것 같았다. 


밖에서 섹스할 때 자주 가는 여관이 있다. 좆나 변두리에 있는데, 우리가 돈이 없어서기도 하지만 그냥 누구라도 보는 게 싫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이치마츠를 거기로 끌고 갔다. 얘는 지금껏 내가 끌고 가면 반항 같은 걸 한 번도 안 했는데, 오늘은 계속 돌부리에 걸린 듯 멈칫거렸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면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거라. 이치마츠는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불편해 보였다. 하루가 지나도록 눈치 못 챈 내가 등신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이치마츠를 침대에 앉혔다.



“옷 벗어 봐.”

“왜?”

“섹스할 때 옷 입고 해?”

“……그럼 불 꺼.”



일어서더니 전등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이치마츠의 손목을 잡아챘다. 억지로 침대에 다시 앉혀서 교복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자 이치마츠는 이내 체념한 듯 몸에 힘을 쭉 뺐다. 교복셔츠와 안에 있던 티셔츠까지 다 벗겨내자 이치마츠는 침대 위로 풀썩 누웠다. 등 쪽은 혼자서 어떻게 못 한 건지 하얀 티셔츠가 핏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이치마츠는 또 먼지 같은 목소리를 냈다.



“나를 보면 평범하게 사랑해줄 마음이 안 생기나 봐.”



가만히 천장을 보며 이치마츠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엄마도 나한테 그랬을까? 뒷말은 정말로 미약하게 들릴 정도로 말했는데도 한 글자 한 글자 귀에 박혔다. 심장에서 즙을 짜내는 느낌이다. 나는 뒷말은 못 들은 체 대답했다.



“그건 그 새끼들이 병신이라 그래.”



이치마츠가 고개만 들어서 나를 바라봤다.



“형도 그랬잖아.”



그렇게 말한 이치마츠가 혼자 웃더니 내 넥타이를 당겨서 자기 위로 오게 한다. 섹스할 거라며? 내 셔츠 단추를 풀어가는 손이 착잡하다. 도저히 섹스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하얀 상반신에는 빨갛게 덴 자국도 몇 개 보였다. 너 괜찮아? 묻자 천천히 눈을 감은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몸이 아픈 건 괜찮아.”

“…….”

“사실, 몸이 아프면 오히려 꽉 찬 느낌일 때도 있고.”



다시 눈을 뜬 이치마츠가 이죽거렸다. 내가 원래 좀 병신 같아, 자조적으로 말하던 이치마츠가 기어코 내 셔츠를 다 풀어서 벗겨냈다. 내 목을 끌어안고 할짝거리던 이치마츠는 고개를 살짝 젖혀서 속닥거렸다.



“그러니까, 형. 나랑 진지해지려고 하지 마.”

“…….”

“나는 이 정도가 딱 좋아.”



내 손을 끌어당겨서 자기 가슴 위에 얹은 이치마츠가 새파랗게 웃는다. 전에도 본 적 있다. 내가 몇 번이고 부유했던 그 빛깔이었다. 그건 지독한 결핍이었다.



“그래도 나는 형이랑 하는 게 제일 좋긴 해.”



나는 여전히 몇 번이고 너의 심해로 담금질 당한다.




-


그냥..... 뭘 쓰고 싶어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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