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이치] 비선형 # OSOMATSU 2016. 8. 19. 05:22

근래에 이렇게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던가. 잘은 몰라도 이마가 펄펄 끓고 있는 건 느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그때 학교 못 갈 정도로 몸살 호되게 앓은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은데. 뭐 딱히 건강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플 여유도 없었던 거지.



“쇼조…….”



정신이 확 들었다. 갑자기 앉아서 그런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손등에 꽂혀 있는 바늘이나 주위가 소란스러운 걸 봐서는 응급실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몸이 너무 안 좋아서 편의점에 하루만 쉬겠다고 연락하고 모처럼 쇼조를 데리러 학교에 갔었다. 교문에서 아이를 만난 건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아득한 걸 보니 그때 쓰러진 모양이었다. 진짜 되는 일이 없네. 애 앞에서 꼴사납게. 시간이 많이 지난 건지 챔버에 뚝 뚝 떨어지는 수액이 거의 끝물이었다. 쇼조는 어딨지. 병원에 같이 왔나. 손등에 꽂힌 바늘을 빼고 허술하게 쳐져 있는 커튼을 젖혀서 처음 눈에 보이는 간호사를 붙잡았다. 저, 같이 온 어린애가 있을 텐데. 어디 있나요? 멍청한 내 얼굴과 내가 있던 침대를 번갈아가며 보던 간호사는 같이 앰뷸런스 타고 온 꼬마라면 응급실 밖에 보호자 대기석에 있을 거예요, 대꾸한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까닥이고 빨간 등이 켜져 있는 응급실 입구를 찾았다. 안에 있을 땐 몰랐는데 나오자 밖이 어둑한 게 보였다.



“아빠.”



대기석이라는 게 생각보다 넓어서 좀 헤매는데 등 뒤에서 아빠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쇼조, 많이 기다렸지. 감기 기운 때문에 뻑뻑하게 갈라진 목소리를 내며 뒤를 돌았을 때였다.



“이치마츠.”

“……형?”





비선형

.written by. 르헨

.



.

그 날의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날씨만은 기억한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일주일 정도 앞둔 때였는데, 얕은 눈발이 흩날렸다. 그러니까, 쇼조가 우리 집 앞에 버려져 있었던 날. 평소엔 한 번도 그런 적 없다가 그 날만 유독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난 건 쇼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오소마츠 형에게 쓰인 구구절절한 편지를 손바닥만 한 가슴팍 위에 품은 채 이불에 쌓여 있던 아이. 형의 아이라고 했다. 자기는 도저히 책임질 상황이 안 된다고. 가끔 어깨너머로만 듣던 형이 1년 조금 넘게 사귀다 반년 전에 헤어졌다는 애인인 것 같았다. 잔뜩 흐트러진 글씨로 범벅된 편지와 아이를 한참을 번갈아 봤다. 겨울이라 아직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여명이 밝아올 때쯤이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묵묵히 짐을 챙겼다. 



「이치마츠 형 어디 가?」



인기척에 깬 건지 부스스 일어난 토도마츠가 나를 불렀다. 대충 둘러대려는 순간 현관문 밖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깬 모양이었다.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토도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형 미쳤어?」



앞뒤 사정을 들은 토도마츠는 형 정말 미쳤다면서 나를 뜯어말렸다. 나는 아이를 내가 데리고 도망가서 살 생각이었다. 이때 나는 오소마츠 형을 아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생각해도 등신 천치인데 그냥 막연하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토도마츠가 난리 치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아이를 안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허름한 여관에 와서 집을 푸는 동안까지 토도마츠는 나를 따라와서 붙잡고 설득했다. 



「형이 왜 그러고 살려고 해. 형이 왜.」



토도마츠가 우는 건 그때 처음 본 거 같다. 그새 다시 잠든 아이를 낡은 이불 위에 뉘이자 마자 내 손목을 무작정 잡고 여관 복도로 나온 토도마츠는 새빨개진 눈으로 나한테 빌었다. 일단 다시 돌아가서 같이 생각하자고. 뭘 같이 생각해? 뭐가 달라져. 토도마츠 나는 그냥 최소한의 사람이 망가지면 좋겠어서 그래.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자 토도마츠가 입술을 짓씹었다. 형, 막말로―



「형 오소마츠 형한테 아무것도 아니잖아. 형만 좋아하는 거잖아. 근데 형이 왜 이렇게까지 해.」

「응. 그러게.」

「……방금 건 미안 형.」

「괜찮아. 가끔 연락할게. 토도마츠 너한테는.」



토도마츠는 그 뒤로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메일만 주고받았다.


허름한 여관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이와 둘만의 시간이었다. 하루대부분은 울면서 보냈다. 분유통을 달그락거리는 소리에도 깨서 우는 아이 때문에, 숨소리조차 한껏 죽인 채로 그렇게 엉엉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 몇 주를 내내 울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이는 이제 나를 보면 방긋 웃는다. 분유를 먹일 때면 내 손가락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어르는 팔이 점점 말라갔다. 근데 그럴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거였다.


최소한의 사람이 망가졌으면 좋겠다니. 웃기고 있어 정말. 처음엔 나도 내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 알 거 같았다. 나는 그냥 형 인생에 뭐라도 끼어들고 싶었던 거였다. 잔뜩 울면서, 세뇌하는 거였다. 나는 형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야. 대상 없는 보상심리를 만들기 위해서. 그건 사실 형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도 뭣도 아니었다. 내 좆같은 이기심이었다. 앙상해진 내 팔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억지로 형에게 빚을 지우고 싶었던 거지. 6년 넘게 앓았던 외사랑은 생각보다 삐뚜름한 거였다.

.

.

.

그로부터 9년 만이었다. 응급실 대기석에서 뜬금없이 재회한 형은 나를 보자마자 끌어안았다. 너, 진짜로 죽은 줄 알았어. 알아? 물기 축축한 목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방식과는 너무 다른 식으로 재회해서였을까, 그냥 현실성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쇼조와 사는 집은 원래 집에서 버스로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내 발로 가지 않는 이상 평생 마주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바로 온 건지 정장을 차려입은 형이 낯설다. 원래 향수 같은 거도 뿌리는 사람이었나. 순간 거북함이 밀려와서 형의 어깨를 천천히 밀어내며 물었다.



“형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사람이 쓰러졌는데, 보호자는 어린애뿐이고. 수납은 해야겠으니 가족들 조회하다가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 한 거 같더라.”



사람 쓰러져 있는 그 몇 시간 수납 밀리는 걸 못 견뎌서 멋대로 연락이나 하냐고. 괜한 병원 탓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자 형도 따라서 인상을 쓴다. 너 과로 때문에 쓰러진 거래. 대체 뭘 하고 사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자 최근에 무리를 했나 싶다. 거의 하루에 18시간씩 근무했으니까. 엉거주춤하게 형 옆에 서 있던 쇼조가 내 쪽으로 와서 팔 소매를 잡아당긴다. 나와 얼굴이 똑같은 형을 보고 놀란 건지 쇼조는 평소보다 움츠러들어 있었다. 쇼조, 이리 와. 팔을 뻗어서 아이를 안아 올리자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형과 눈이 마주쳤다. 이 꼬마는 누구야? 형이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물으려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형. 나 하나도 안 불편해. 어딜 가든 아빠랑 똑같이 생겼다는 말을 듣는 쇼조의 볼을 어루만져주며 깔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아들.”

.

.

.

형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우리 집에 눌러앉았다. 네가 이렇게 아픈데 애랑 둘이서 어떻게 지내냐는 거였다. 나 정말 괜찮은데. 아니면 집에서 쉬는 토도마츠도 있잖아. 토도마츠한테 부탁하면 돼. 어떻게든 거절하려 했지만 형은 오히려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너 우리한텐 연락 하나도 없었으면서 토도마츠랑 계속 연락했다며. 난 그래도 우리 둘이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형 특유의 뭉근하게 발음이 늘어지는 목소리에 발이 묶여서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 그만두라는 말에 병신처럼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날 오전에 잠시 자리를 비운 형은 저녁에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돌아왔다.



「쇼조. ……첫째 삼촌이야.」

「쇼조 안녕. 나 너희 아빠 첫째 형. 잘 부탁해.」



형과 쇼조와 셋이 사는 건 순탄하다면 순탄했다. 쇼조는 처음에야 낯을 가렸지만 원래 모난 구석이 없었고, 형도 그런 쇼조를 예뻐라 했다. 겉으로 보긴 전혀 문제없었다. 작은 아파트가 셋이서 지내기에 좀 좁다는 걸 빼고. 형은 재회했던 그 날 쇼조가 내 아들이라는 걸 들은 이후에 더 이상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원래 성격상 그런 걸 꼬치꼬치 캐묻는 게 이상한 거겠지만. 그건 참 다행이었지만, 서글프지 않냐 물으면 그렇지 않다, 고 확실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 문제가 있는 건 확실히 내 쪽이었다.



“오늘 쇼조 몇 교시야?”

“5교시.”

“이따 집에 오면 같이 목욕탕 데리고 갔다 와도 되지.”

“……마음대로 해.”



쇼조가 학교에 가고 나면 형과 둘이서 지냈다. 나는 쇼조가 학교 갈 때 일어나서 아이를 챙겨서 보내고, 형은 그것보단 한참 늦게 일어나서 같이 이른 점심을 먹는다. 형에겐 세월의 간극도 없는 건지 그냥 집을 나오기 바로 전 그때처럼 나와 편하게 지냈다. 그래서 그런 걸까. 형이 여전해서 나도 여전하려고 하는 걸까. 처음 재회했을 땐 일지 않았던 구질구질한 것들이 속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안 보고 지내는 동안 형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래도 많이 희미해졌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한참 틀려 있었지만 쇼조랑 지내는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글러 먹은 방식으로 형을 사랑했지만, 쇼조는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평범한 부모 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최근엔 형을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런데 자꾸 지낼수록 내 속에 구정물이 찬다. 허름한 여관방에서 나던 냄새가 내 주위를 맴도는 듯했다.



“너 정말 여전하네.”



정말 깜짝 놀랐다. 뭐가? 괜히 찔려서 새된 소리로 대답하자 형이 내 손을 턱짓한다. 너 어릴 때부터 젓가락질 못 하더니 아직까지 이러네. 형이 내 손을 빤히 보면서 웃는다. 젓가락질은 많이 고친다고 고쳤는데 잡생각을 하다가 또 습관이 나온 모양이었다.



“어쩐지 쇼조가 젓가락을 이상하게 잡더라. 어려서 그런가 했더니 너한테 배운 거였구나.”

“……그러게.”



형 자체는 여전하지만 전과 다른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웃는 얼굴이 새삼 성숙하다. 나는 9년 전 그때랑 똑같은데, 형은 딱 9년만큼 벌어져서 그런 거겠지. 이제 정돈되지 않은 덥수룩한 앞머리보단 왁스로 반듯하게 넘긴 머리가 어울리는 얼굴로. 늘어진 후드보다는 다려진 셔츠가 어울리는 나이로. 그냥 편하게 하고 있는 지금도 정갈하다. 그에 반해 여전히 들쭉날쭉하게 눈꺼풀을 덮는 내 앞머리를 매만졌다. 내 젓가락질을 지적하더니 다시 고개를 박고 밥을 먹는 형을 바라보는 눈이 까맣게 식어갔다. 


나는 여전히 형을 그때처럼 사랑하고 있는 걸까.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건지 왼손 넷째 손가락 반지 끼는 부분이 유독 하얗게 덜 탄 걸 보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몰려온다. 질투?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나는 형을 정말로 사랑하지만 한 번도 형이랑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나는 그런 붉은 색의 감정은 그다지 갖고 있지 않다. 내 건 좀 더 비선형적이다. 밥알을 천천히 씹으며 생각한 결론은 그런 거였다. 그냥 옛날이랑 달라진 게 없는 새끼라서 그런 거라고.


나는 형에게 쇼조에 관한 사실대로 얘기하고 싶은 거였다. 형이 그렇게 잘 지내는 동안 나는 이렇게 개같이 구르면서 살았어. 단순히 형 때문에. 그걸 말하고 싶은 거였다.


앞으로의 관계가 전부 망가진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너 같은 거랑은 아예 태곳적부터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틀어져도 괜찮을 거라고. 오히려 그냥 망가뜨리고 싶은 거겠지. 어떤 식으로든 그냥 형이 나 때문에 평생 가슴 앓았으면 좋겠어서. 형이 나 때문에 잘 지내지 못했으면 싶어서. 그게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병신에 대한 짜증이어도 좋고, 못난 형 때문에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망친 불쌍한 등신에 대한 죄책감이어도 좋으니까. 내가 쇼조를 데리고 도망친 날 바랐던 건 이런 거였다. 그 여관방에선 물 먹은 곰팡이 냄새가 났다. 꼭, 지금처럼. 쥐고 있던 수저를 천천히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의도된 불가항력이었다.



“형, 실은 쇼조 말이야…….”

“응?”



어물쩍하게 물꼬를 트자 고개를 반쯤 숙이고 밥을 먹던 형이 고개를 들더니 오른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이가 자주 하는 행동이다. 순간 말문이 턱 막힌다. 코끝에서 맴돌던 눅진한 냄새가 일순 사라졌다. 내가 앞으로 내뱉을 말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다 털어놓아도 학교에서 다녀온 아이를 평소처럼 맞아줄 수 있을까. 미성숙한 작은 손이 목을 꾹 죄어온다.


……아. 쇼조.



「아빠,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아이가 엄마에 대해 묻는 건 드문 일이었다. 글쎄……말끝을 흐리는 나를 숟가락을 쥔 채로 바라보는 아이가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이가 엄마에 대해 물을 때마다 속이 울렁인다. 아이의 엄마를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말해줄 수도 없었다. 내가 한참 뜸을 들이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 엄마는 무슨 요리를 잘 했어?」

「…….」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그런 걸 물었는데 나는 대답을 못 했어.」



뭐라고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내가 계속 답이 없자 아이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눈이 형을 참 많이 닮았다. 나는 형이랑 쌍둥이로 태어난 걸 수없이 저주했지만 가끔 동네 아주머니들이 애가 아빠를 빼다 박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안도했다.


그렇지만 아이가 이런 식으로 형과 비슷한 눈을 할 때는 죽고 싶다. 나와는 생김새만 비슷하지 사실 전혀 다른 얼굴이다. 그러면서도 형과는 또 다른 모양으로 능선을 그리는 눈썹이 축 처질 때면 보지도 못한 아이의 엄마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꽉 묶어 맸다.



「응?」



되물어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아이는 내가 그녀의 얘기를 싫어한다는 걸 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주제에 아이는 쓸데없이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엄마‘ 라는 단어를 꺼내면 내가 속상해한다는 걸 인지한 후로는 어지간해선 먼저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게 아니니까 물은 거겠지. 나를 바라보는 눈이 새파랗다. 그 눈을 외면하지 못해서 얘기도 제대로 못 들어본 그녀를 멋대로 상상한다. 아마도, 괜찮은 여자였겠지. 형과 사랑에 빠졌던 여자였으니까 정말로 괜찮았을 거다. 그렇게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은데 입이 안 떨어졌다. 목이 텁텁하게 매웠다.



「미안해. 아빠 내가 잘못했어.」

「아빠 울지 마.」



숟가락을 내려놓은 아이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내 쪽으로 와서 나를 꼭 껴안았다. 미안해, 아빠. 나는 아빠만 있어도 돼. 내 허리를 끌어안은 채 쇼조는 나이 차가 4배는 되는 어른을 달랜다. 그런 애였다, 쇼조는.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형을 사랑하는 것과 아주 별개다. 그렇게 내가 놓을 수 없는 작은 손이 재갈이 되어 내 입을 막는다.



“……아니야.”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앞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을 거다. 여전히 형을 사랑하지만 그런 형의 아이도 사랑하게 되어버림으로써. 나로 인해 형을 아프게 하고 싶지만 아이를 아프게 할 수는 없으므로. 그 중간에 서서 꼼짝없이 잠식당하겠지. 형의 무엇이 되지도 못하고, 아이의 반쪽짜리 아빠인 채로. 



“그냥, 형 다시 언제 돌아가나 해서.”



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돌리자 형이 웃는다. 너 몸 괜찮아지는 거는 보고 가야지. 다정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걸 받아치기가 힘들다. 형, 그러면 여기서 내가 죽으면 안 가고 쇼조랑 살 거야? 하는 말이 불쑥 차오른다. 근데 나 정말로 지금이라면 당장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왈칵왈칵 치미는 말들을 삼키는데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형이 다시금 입을 뗀다. 주황색 같은, 그런 목소리로.



“그런데 좀 아쉬운 거 있지. 쇼조랑 정이 많이 들어서.”

“……그래?”

“응, 괜히 결혼하고 싶은 거 있지.”

.

.

.

그러니까, 나 정말 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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