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이치쵸로] 청색증(靑色症)| # OSOMATSU 2015. 12. 29. 04:31
※전개 근본없음 주의
※Killing me softly, 랑 아주 조금 이어집니다^^.........
청색증(靑色症)
written by.르헨
“형, 괜찮아?”
“아, 응. 쥬시마츠.”
티비를 보다 말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울상을 하고 있는 쥬시마츠와 그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치마츠가 있었다. 잠시 동안 쥬시마츠를 달래던 이치마츠는 부엌으로 가던 중이었는지 그쪽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를 절룩였다. 고개를 살짝 내려서 발 언저리를 바라보자 핏물이 잔뜩 배어 있는 밴드 몇 개가 보인다.
“쵸로마츠.”
“아?”
“아냐. 그냥.”
이치마츠를 곁눈질로 계속 바라보는데 바로 근처에서 오소마츠형 목소리가 들린다. 대뜸 부르기에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니까 싱거운 대답만 늘어놓는다.
아.
몇 초 지나고 나서야 그게 경고 비슷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보지 말라는 거겠지. 대충 알 것 같아서 형이 원하는 대로 그냥 티비나 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형은 몸을 일으켜 이치마츠가 갔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탁, 거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서 두 사람이 사라진 쪽을 바라봤다. 토도마츠랑 쥬시마츠도 나랑 비슷한 곳을 힐긋거리는 게 느껴졌다.
왜 이쪽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씨발.
우리 형제들 사이엔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게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고, 각자 눈치 챈 시기도 다르겠지만. 오소마츠형이랑 이치마츠는 이상한 관계였다. 이상하다고 표현한 건 진짜 이상해서. 그러니까, 둘은 섹스를 하는 사이였다. 섹스하는 사이라고 하면 어폐가 있는데 일단 그렇다. 나도 사실 안 건 한두 달밖에 안 됐다. 정말, 어쩌다가, 평소엔 잘 쓰지도 않는 2층 화장실에 갔다가 둘이 화장실에서 섹스하는 소리를 들어서. 다들 계기는 다르겠지만 나랑 비슷한 식으로 알았겠지. 내가 제일 늦게 눈치 챈 축이었다.
섹스만 한다기엔 확실히 어폐가 있다. 조금 전에 봤던 이치마츠의 발목을 떠올렸다. 밴드가 서너 개씩 덕지덕지 붙어 있던 하얀 발목. 거의 항상 그곳엔 밴드가 붙어 있었는데 어쩌다 밴드가 떨어진 건지 맨 발목을 본 적이 있었다. 빼곡한 열상이었다. 날카로운 걸로 헤집어 놓은 듯한……얇은 피부 위로 새빨갛게 벌어진 상처가 보기 흉했다. 그 외에도 이치마츠는 몸에 늘 자잘한 멍 따위를 달고 있었다. 그걸 오소마츠형이 했다고 확신할 수 있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지만 추측이었다. 늘 키스마크가 잔뜩 생기고 조금 지난 후에 멍이 올라오곤 했으니까. 어쨌든, 진짜, 존나 이상한 관계다. 거기에 카라마츠까지 끼어서 더럽게 복잡해 보이긴 했는데, 거기까진 신경도 쓰기 싫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오소마츠형이 고개만 쏙 내밀고 쥬시마츠를 부른다.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형을 바라봤다. 참고로 말하자면,
“쥬시마츠, 구급상자 좀.”
“아, 응.”
나는, 형이랑 이치마츠가, 존나 싫다.
왜 싫냐고 하면 딱히 논리적으로 반박할 생각은 없다. 싫은 게 싫은 거지.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주관 중에 내가 선호하는 건 모럴이었다. 나처럼 선량한 시민인 척 재고 다니는 새끼들한테는 이만한 방패가 없다. 내가 이상한 건지 난 모럴에서 비롯되는 우월감을 좋아한다. 내가 그딴 변태새끼라 그런지 몰라도 도덕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형이랑 이치마츠가 그냥 존나 짜증났다. 애초에 가족끼리, 심지어 남자끼리 저러는 거 잘 이해가 안 된다. 당연히 보통이면 싫어하지 않나? 나머지 형제들이 모르는 척 아닌 척 눈치 봐야 하는 것도 좆같고. 볼을 실룩거리는데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엔 오소마츠형이랑 이치마츠 둘이 함께였다. 대충 훑어보자 밴드는 사라지고 붕대가 감겨 있었다. 이번엔 좀 심했나 보네.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턱 끝까지 차올랐다.
“너넨 뭐 이렇게 재미없는 걸 보냐.”
오소마츠형이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에 앉으면서 리모컨을 집어 든다. 형 개인을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닌데 이치마츠랑 묶어서 생각하면 좀 씨발 같다. 괜히 조금 물러서서 벽에 기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이치마츠가 앉아서 나처럼 기대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것마저 왠지 짜증나서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살짝 고개를 돌리는데 어째선지 이치마츠가 내 쪽을 빤히 보고 있었다. 당연히 그 상태로 눈이 마주쳤다. 당황해서 황급히 표정을 바꾸려는데 나와 시선을 계속 맞춘 채로 이치마츠가 씩 웃는다.
그래,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
.
.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이치마츠와 눈이 마주치는 빈도가 늘었다. 피차 할 일 없는 처지들이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다 같이 모여 있을 때를 포함해서 어쨌든 한 공간에 있노라면 어김없이 몇 번이고 눈이 마주치는 거다. 그게 좀 이상했다. 형제들 사이에서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나는 이치마츠랑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당연히 눈을 맞추고 얘기하고 그런 일도 잘 없다. 각자 편한 형제들이 따로 있으니까. 그런데 계속 시선이 엉켰다.
“쵸로마츠.”
가끔, 둘이 어쩌다 자리가 붙어 있을 땐 이렇게 싱겁게 부르고 고개를 젓기도 하고. 그러면 나도 되묻지 않았다. 싱겁게 고개를 젓는 이치마츠에게 나도 대충 알겠다고 고개만 끄덕이면 이치마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했다. 좋아한다? 따지자면 그런 쪽인 것 같았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내 이름만 부르는 이치마츠에게 한 번도 왜 그러냐고 되묻지 않았다. 다른 형제였다면 싱겁다고 몇 번이고 태클을 걸고넘어졌을 거면서. 그냥, 그냥, 직감적으로 피해야 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엮이기 싫기도 했고. 식구가 많은 건 다행이었다. 둘만 남아서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은 어지간하면 오지 않을 터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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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씨발.
형제를 두고 그딴 생각을 해서 벌을 받은 건지 공교롭게도 집에 이치마츠랑 나만 남는 날이 생겼다. 다들 각자 약속이 있다나 뭐라나. 그걸 당일 아침에서야 알아서 나도 급하게 약속이 있는 척 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대놓고 티가 날 것 같아서 참았다.
확실히 불편하다. 원래도 둘이 막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이 있으면 각자 할 일은 아무렇지 않게 했었는데, 최근의 일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확실히 어색하다. 솔직히 이치마츠한테 내가 눈에 띄게 서먹하게 굴긴 했다. 정작 이치마츠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지만. 쟤도 진짜 여간 또라이는 아니다. 둘이서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그냥 각자 거실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티비에 애써 집중했다. 지루한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티비에 시선을 묶어둔 채로 나머지 가족들이 얼른 집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이치마츠가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치마츠 후드 주머니에서 밴드 껍데기 같은 게 떨어지는 걸 종종 봤다. 아마 그런 것들이 마찰하는 소리겠지. 티비 볼륨을 높였지만 신경은 온통 거기로 쏠렸다.
“형 티비 재밌어?”
불쑥 목소리가 치고 들어온다. 바닥에 엎드려서 혼자 뭔가 끄적이던 이치마츠가 몸을 일으켜서 나를 바라봤다. 어, 그냥 그래.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자 이치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소리만 들어도 재미없는데. 그렇게 말하고 웃는데 왠지 찔려서 티비만 바라봤다. 잠깐 말이 없던 이치마츠는 무릎걸음으로 기어오더니 내 앞에 턱 앉았다. 그러고선 리모컨으로 티비를 꺼버리는 거다. 뭔가 싶어서 인상을 찌푸리고 이치마츠를 바라보자 입술을 몇 번 우물거리다가 입을 뗀다. 좀 불안했다.
“……형 나랑 자보고 싶어?”
“……? 아니, 전혀.”
“역시 그건 카라마츠 얘기인가.”
이치마츠가 고개를 숙여서 킥킥거린다. 기분이 확 이상해진다. 어이가 없어서 나도 따라 웃었다. 내 웃음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이치마츠가 가볍게 물음을 던진다. 할래 진짜? 한동안 계속 나를 불러놓고 머뭇거리던 게 저런 말이었나 보다. 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내가 오소마츠형이랑 자기랑 그러는 거 존나게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저러는지. 내가 자꾸 좆같이 구니까 일부러 시비를 거는 건지, 아니면 일종의 오기인 건지. 이치마츠가 고개를 든다. 꼭 마모된 선단 같다. 나는 한없이 닳은 저 표정이 너무 싫다. 나랑 같은 얼굴로 저딴 얼굴을 한다는 게 씨발, 좆같잖아. 약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너 이러는 거―
“오소마츠형은 알아?”
“모를걸…….”
“그런가.”
“꼭 형이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표정이네.”
이치마츠가 숨을 내뱉듯 속닥였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글쎄……어쩌면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내가 그렇게 자세히는 몰라도 형 성격이라면 이치마츠를 꽤 조이고 있을 거다. 예전에 초등학교 때쯤인가 오소마츠형이 뜬금없이 햄스터를 사온 적이 있었다. 자기가 키울 거라면서 말이다. 카라마츠가 귀엽다고 몇 번 만졌는데 진짜 뒤지게 맞았다. 결국 햄스터는 삼 일 뒤에 죽었지만. 왜였더라. 음. 왠지 이건 별로 생각하기 싫다. 작게 고개를 젓고 다시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바랜 얼굴이다. 눅눅한 눈이다. 꼭, 지가 맨날 발목에 달고 다니는 밴드처럼.
“알면 네가 곤란하겠지.”
“어, 맞아.”
이치마츠가 웃는다. 시선을 조금 내려서 이치마츠와 눈을 맞췄다. 나랑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눈꼬리가 더 패여 있는 눈이다. 이상하게 생겼어.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꾹꾹 누르자 이치마츠가 인상을 쓴다. 쑤실 데가 거기밖에 없어? 달싹거리는 입술이 잘도 저런 소리를 한다.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타악, 딱밤 놓는 시늉을 했다. 너 존나 싸 보여. 거리낌 없이 말하는데 벨도 없는 게 웃어재낀다.
“싸게 해줄게. 할래?”
“…….”
“하여간 병신…….”
아, 씨발년이 진짜.
삐뚜름하게 비웃는 표정이 짜증나서 그냥 휙 몸을 돌리려는데 이치마츠가 내 손목을 꾹 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새 삐쳤냐? 이치마츠가 빈정거린다. 그러고선 혼자 웃는다. 얘 진짜 좀 이상하다. 박히는 게 좋은 거면 오소마츠형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아니면 씨발, 지 좋다는 카라마츠나. 그런 생각이 얼굴에 티 났는지 얘가 어깨를 으쓱인다.
“나 좋다고 달려드는 놈이랑 하면 불공평하잖아.”
“뭐가.”
“나는, 이렇게 아픈데.”
그렇게 말한 이치마츠가 자기 후드티를 잡고 끌어올린다. 덮고 있던 천이 사라진 나신에는 온통 멍이랑 키스마크 범벅이었다.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리자 이치마츠가 덧붙인다. 발목도 아시다시피 맨날 그이고. 말라서 앙상하게 도드라진 복사뼈를 내려다봤다. 바로 위엔 밴드가 붙어 있었다. 손을 갖다 대려고 하자 이치마츠가 발을 뒤로 슥 뺀다.
“나는 이렇게 아프다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치마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냥 가만히 눈을 깜빡거리던 이치마츠는 무릎을 세워서 꼭 끌어안더니 그 위에 턱을 괸다. 하얗게 드러난 발등에도 불그죽죽한 상처가 많다. 보고 있기가 좀 거북해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런 나를 물고 늘어지듯이 바라보던 이치마츠가 가벼운 말투로 입을 뗐다.
“형은 나랑 하기 싫어 할 것 같아서.”
“…….”
“까놓고 말해서 그냥 나를 싫어하는 거겠지만.”
그래서 하고 싶어.
그렇게 말한 이치마츠는 무릎을 안고 있던 손을 풀더니 내 위로 올라와서 앉는다. 그러더니 내 목에 팔을 두른다. 아무리 빌어먹을 동정 소리를 들어도 등신은 아니라서 이게 뭘 뜻하는지 안다. 그것보다 내가 자기를 싫어해서 하고 싶다니.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메커니즘이야.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이치마츠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다짜고짜 내 입술 위에 자기 입술을 꾹 눌렀다가 뗀다.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감촉이 지극히 성적이다. 이치마츠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렇게 말하는 입가가 다 터진 입술이 나른하다. 이게 쫌, 씨발, 순간 이상해져서 이치마츠의 어깨를 급하게 잡아챘다.
“진짜 할 생각이야?”
“아마도.”
나직이 대답한 이치마츠가 엉덩이를 뭉근하게 비빈다. 숨을 훅 들이켰다. 미약하게 소독약 냄새가 난다. 이치마츠는 내 어깨에 이마를 댄 채 바지 버클로 손을 뻗었다. 어깨를 꾹 쥐고 있던 손을 내려서 허리에 두르자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조금 웃었나, 그런 거 같다. 이거 좆될 거 같은데. 숨을 한 번 고르고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이거 내가 오소마츠형한테 말하면 어떻게 돼? 존나 찌질한 질문에 이치마츠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어떻게 되긴…….”
이치마츠가 입을 일자로 합 다물었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한참 눈을 굴린 이치마츠가 얕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죽는 거지.”
.
.
.
어릴 때부터 이치마츠가 잘 이해가 안 됐다. 아주 어릴 때, 어른들 말을 잘 들을 때도 존나 이상했지. 그때는 우리 형제들 전부 애새끼처럼 날뛸 때였으니까. 그때는 그렇게 얌전하더니 나이 좀 들고 나머지 형제들이 철 좀 들라니까 정작 자기는 한참 엇나가 버리고. 결국은 지금 이 사달. 솔직히 말해서 형제 중에 가장 어색한 사람을 꼽으라면 이치마츠였다. 태생적으로 좀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 애초에 6명씩이나 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잘 맞는 건 무리겠지만.
“밴드 붙여줘.”
“이제 막 시키냐?”
“아프다.”
“씨발.”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를 일이다. 이치마츠가 건네준 밴드를 뜯어서 목 뒤에 붙여주며 생각했다. 상황이 병신같이 돌아가고 있다고. 이치마츠랑 잔 뒤로는 계속 이딴 관계다. 이치마츠는 이상하게 오소마츠형과의 관계를 나한테서 달래려고 했다. 둘이 서로 좋아하는 건 맞는데, 그건 그런데, 아 몰라 씨발. 내 알 바야. 어디 가서 위로받고 싶은 거면 차라리 너 좋다는 카라마츠한테 가보라고 짜증도 내봤는데 그건 또 싫단다. 왜 난데? 짜증스럽게 물을 때마다 이치마츠는 한결같이 대답한다.
형은 나 안 좋아할 거잖아.
하여간 더럽게 꼬였다고, 생각한다. 상처를 덮은 밴드를 일부러 꾹 누르자 아픈 건지 이치마츠가 신음을 낸다. 짧게 웃는 소리가 나더니 이치마츠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본다. 앙, 이딴 소리를 내면서. 기가 차서 웃자 아예 몸을 돌린 이치마츠가 빨간 자국이 그득한 자기 목을 손으로 감싼다. 저게 쟤 버릇이었다. 할까? 이치마츠가 슬핏 눈을 감았다. 노곤한 목소리가 흩어진다. 맨날 저런 식이다. 또 홀리면 병신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형도 섹스 자체는 좋아하잖아.”
“안 급해, 별로.”
“좀 대준다면 받아라.”
노골적인 말에 인상을 찌푸리자 같이 인상을 찌푸리던 이치마츠가 내 무릎을 베고 눕는다. 형은 나 왜 안 좋아해? 이딴 질문이나 해댄다. 너 그거 자의식과잉이야. 덤덤하게 대꾸했더니 이치마츠가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린다. 내 쪽으로 향한 손목이 얼룩덜룩하다. 깨문 자국도 있고 칼로 베고 지나간 흉터도 있고……괜히 소매를 끌어다 덮어주자 눈치 챈 건지 이치마츠가 손가락을 꾹 오므렸다. 어색해질 것 같아서 말을 돌렸다.
“내가 좋아하면 좋겠어?”
“전―혀.”
“응, 난 너 싫어해.”
그렇겠지, 아마. 나도 모르게 되뇌듯 고개를 주억이는데 이치마츠가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나는 형이랑 하는 섹스 좋아. 얘 진짜 돌려 말하는 법 모른다. 순간 놀라서 내 손으로 이치마츠 입을 막자 손바닥 밑에서 입술을 오물거리는 게 느껴졌다. 간지럽다고 타박을 주려는데 이치마츠가 혀를 내어 찬찬히 내 손을 핥기 시작했다.
“야, 너…….”
“이제 조금 동해?”
난 존나 단순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씨발, 홀리는 건 더럽게 잘 해. 괜히 이치마츠 탓을 하며 마른 몸 위로 올라탔다. 내 목에 팔을 감으며 안겨드는 얼굴이 이제 좀 익숙하다. 이런 얼굴을 할 줄 아는 건 평생 몰랐는데. 쭉 몰라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나도 좆같은 새끼가 돼가고 있었다. 내 밑에서 엎드려 보채는 이치마츠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좀 묘했다. 뭐라고 형용할 수는 없는데…….
난 그냥 섹스가 하고 싶은 건가?
고개를 숙여 하얀 등을 내려다본다. 말라서인지 뾰족한 구석이 있는 등이다. 손을 뻗어서 도드라진 날개뼈를 어루만지자 이치마츠가 몸을 움츠린다. 뒤에서 보이는 귓바퀴가 붉다. 이치마츠는 생각보다 훨씬 몸이 예민했다. 이치마츠가 엉덩이를 조금 치켜들었다. 다시금 이상한 기분이 잦아들었다. 문득 묻고 싶은 게 생겨서 이치마츠의 허리를 끌어당겨서 안으며 질문을 던졌다.
“내가 만약 너 좋아하면 어떻게 돼?”
내 질문에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이치마츠는 잔뜩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도 나 때리게?”
웃음기 하나 없는 그 말에 내 쪽에서 한 대 처맞은 기분이었다. 얘는 씨발, 내 상상 이상으로 꼬여 있었다.
.
.
.
성격이 나쁜 건 인정한다. 정상인 척해도 사실 제대로 뒤틀려 있다는 것도 안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지. 생겨먹은 대로 사는 건데. 그냥 단순하게 궁금했다. 만약 이치마츠가 나랑도 붙어먹는 걸 알면 오소마츠형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냥, 진짜 궁금했다. 외출한다는 형에게 언제 돌아오냐고 물었다. 4시쯤, 하는 형의 대답을 들으며 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못 들었길 바라면서. 형 그러면 그때 나랑 2층에서 좀 봐. 할 말 있어. 내 말에 형은 별다른 물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4시쯤에 맞춰서 이치마츠랑 할 생각이었다.
이치마츠는 오늘은 안 된다고 했다. 곧 형이 돌아올 거라고. 근데 내가 억지를 부렸다. 왜 나만 맨날 네 장단에 놀아나야 하냐고, 뭐, 그딴 말들로. 다 쇼였지만. 그러던 와중에 실수로 욱해서 이치마츠의 뺨을 때렸다. 이치마츠는 그 뒤로는 반항 없이 잠잠했다. 이치마츠를 섹스를 한 건 몇 번이나 됐지만 내가 손찌검 한 건 처음이었다. 이치마츠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너를 좋아하게 되면 어떡할 거냐는 물음에 형도 나 때리게? 하고 대답하던 선득한 목소리가 다시금 귀에 울렸다.
네 말이 맞다면, 나도 너를 좋아하게 되고 있는 걸까.
존나 나도 또라이가 돼가는 거 같다. 지금까지 중 가장 건조한 관계였다. 이치마츠는 나랑 할 때는 꽤 능동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무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평소엔 서로 말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말도 없었다. 내가 자초한 거라고 해도 얘랑 좀 틀어졌다는 생각에 거칠게 해서인지 관계가 끝나자마자 이치마츠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내가 때려서 잔뜩 부은 뺨을 하고선. 이치마츠가 잠들 때까지 형은 오지 않았다. 아마 예정보다 늦게 귀가하거나 아니면 내가 한 말을 까먹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수건을 적셔 오려고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고개를 들자 오소마츠형이다. 이런 걸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영 시간 계산을 잘못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똑같으니 상관없나. 형은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왔다. 나도 그냥 말 없이 형을 바라봤다. 나랑 이치마츠 앞에 서서 한참을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하는 형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담배를 하나 꺼내서 물었다. 불을 붙이고 이불을 끌어다가 이치마츠의 벗은 몸에다 덮어주는데 형이 발로 그걸 다시 걷어낸다. 잠결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건지 이치마츠가 몸을 웅크린다. 이치마츠가 몸을 옆으로 틀면서 내가 때린 붉은 뺨이 선연하게 드러났다. 한동안 담배 타들어 가는 소리만 들렸다.
나도 내가 무슨 반응을 바라고 이딴 짓을 하는 건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생겨먹은 대로 사는 것뿐이라니까. 형은 어떻게 할까. 옛날에 카라마츠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를 뒤지게 팰까? 형이 남긴 검붉은 키스마크 사이로 보이는 이제 막 생긴 선홍빛 자욱들을 눈으로 하나씩 훑어보던 형은 의외로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쵸로마츠.”
“어, 장남.”
잠시 정적이었다. 무릎을 굽혀 앉은 형은 나와 천천히 눈을 맞추며 픽 웃었다.
“적당히 논 거 같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
“형아는 꽤 진지하거든.”
형이 허리를 숙여서 잠들어 있는 이치마츠 안아 든다. 허리와 다리를 받치는 손이 애틋하다. 형은 저런 구석이 있었다. 존나 개같이 굴다가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랑한다는 듯, 응. 진짜 또라이새끼. 빨갛게 손자국이 남은 이치마츠의 볼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형이 고개를 숙여서 거기에 입을 맞춘다. 그 꼴이 같잖아서 괜히 담배 연기를 훅 뿜었다. 연기에 시야가 막혔다. 이제 좀, 씨발, 볼 만하네.
“야, 형.”
“왜.”
“……아니야.”
싱겁게 대답하자 형이 픽 웃는다. 그래서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우리 사이좋은 편이었나? 원래는 그랬던 것 같다. 이치마츠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발을 뗀 형은 뒤도 안 보고 방은 나갔다. 문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 욕실 어디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거의 필터 끝까지 탄 담배를 대충 지져서 껐다. 눈치로 봐서는 형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래도 한집에 사는데 모르면 등신인가.
“짜증나.”
뒤로 드러누웠다. 아직 이치마츠의 온기가 남아 있는 건지 이불이 미적지근하다. 이불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켜자 소독약 냄새가 난다. 닳은 얼굴이 다시금 머릿속에 잦아든다. 내가 궁금해서 벌인 쇼인데 결국 내가 기분이 더러워졌다. 바라는 반응이 딱히 있었던 건 아닌데 저렇게 나오니까 배알 꼴린다. 그냥, 저 둘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았다. 매일매일 발을 찢어놓아야 안심하는, 그런 사이로. 나는 그냥 지나가던 형제1로.
“씨발.”
담배를 하나 더 깨내서 입에 물었다. 이번엔 불을 붙이지 않고 필터만 물고 있었다. 침 섞인 니코틴이 입천장에 달라붙었다. 사실 아까 전엔 형에게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였다.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좀 누그러들었다.
“형, 있잖아.”
그건 일종의 고해성사 같은 거였다. 형이 꼭 사죄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대상 없는 허공에 대고 고백을 읊조렸다.
“그때 햄스터 내가 죽였었어.”
근데, 이번에도 아니라곤 못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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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이치쵸로인지 쵸로이치오소인지...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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